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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Oct 18. 2024

따뜻한 봄날 아래 (4)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지. 선선한 가을바람의 공기도 점점 차가워져 가고 세월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갈길을 열심히 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갔다. 찰리도 결국 그렇게 갔다. 시간 속으로 먼저 가버린 찰리. 이제는 시간을 뒤로하고 평안하게 쉬고 있을 찰리.


찰리의 죽음이 마을의 큰 변화를 가져다 주진 못했다. 잠시 안타까워했던 몇몇 사람들. 찰리네 가족을 위로해 주기엔 그들과 이전에 왕래했던 이웃들이 많지 없었기에 찰리네 슬픔은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마을 사람들이 찰리네 집에 위로 차 방문하였을 때에도 그 어떠한 위로받을 틈을 꽁꽁 감춘 채 찰리네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찰리 아버지네 잡화점 역시 더욱 굳게 닫혀 있었다.


‘당분간 쉽니다.’


기약 없는 ‘CLOSE’ 간판만이 잡화점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찰리의 소식을 들은 제이미는 며칠을 힘없이 다녔지만 시간이 흐르며 일상에 활기를 되찾아 갔다. 등교시간과 하교시간에 잡화점을 스치는 그 ‘몇 초’는 여전히 마음이 쓰였지만 말이다. 제이미는 아저씨네 부부가 긴 슬픔에 빠지지 않고 힘을 내기를 매일 밤 기도하며 불편한 마음을 잠재우고 여전히 그녀의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이어 나갔다.


제이미의 내면 속에 이번 사건이 큰 파장을 일으킨 건 사실이다. 잔잔한 물결처럼 성장해 온 그녀의 마음속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슬픔이란 감정이 깊게 자리하게 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슬픔은 그녀의 가슴속에서 작지만 강한 분을 일으켰다. 참을성 좋은 제이미가 그녀의 인생에서 의분을 내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였을까. 고민과 갈등으로 인한 번민의 씨앗이 소리소문 없이 그녀에게 심겼다. 그녀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찰리라는 친구가 그렇게 아프다는 사실을 3년이 넘도록 왜 한 번도 듣지 못했을까? 이상하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아무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지만 사람의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이렇게 심각한 아픔을 나는 어떻게 한 번도 듣지 못했지? 아저씨네가 일부로 비밀로 한 것도 아닌데 그러한 사실이 비밀인 것처럼 자리 잡아 다른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고 도움을 주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 나는 행복해도 되는 것이었을까? 내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으니 다행인 것일까? 그렇다고 그 누구의 책임이라 말할 수 없는 찰리의 병에 대하여 터무니없이 세상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옆에 있는 이웃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은 가능한 일이었지 않았을까?’


무정함, 타인의 슬픔, 타인을 향한 사랑과 동정, 지금껏 마음속에 아름다운 것들만 펼쳐 보이며 살아왔던 제이미의 마음에 찬 물을 제대로 끼얹은 듯한 현실이 단번에 일어나 그녀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을 책임져야 할지도 모른 채 그 마음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도 모른 채 그저 그 마음까지도 꽉 끌어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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