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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Oct 19. 2024

따뜻한 봄날 아래 (5)

인간의 슬픔은 또 다른 슬픔을 이렇게도 잘 불러오는지.


기쁨 뒤에도 슬픔이 기다리고 슬픔 뒤에도 슬픔이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한 편이라 말할 수 있을까. 슬픔이라 부르기에는 지나치다 싶은 것들 앞에 쉽게 걸려 넘어지는 인간의 약함이 문제인 것일까. 너무도 빨리 가버린 가엾은 잡화점 아들네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소식을 전해왔다.


이 마을의 소식통인 론의 어머니가 늦은 오후 제이미의 집에 찾아왔다.


“어서 와.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급하게 왔어. 응? 어서 여기 앉아요.”


제이미의 엄마가 론의 어머니와 함께 거실 소파에 앉았다. 제이미도 어느새 내려와 커피를 준비해서 드린 후 거실 한쪽에 있는 자신의 소파에 앉았다.


“어쩌면 좋아. 이 사실을 알고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이렇게 왔어. 지난번에 얘기했던 게 문득 떠올라서 말이야.”


론의 어머니가 정말 걱정스럽고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차근차근 말해봐.”


단단히 들을 준비를 하고 제이미 엄마가 조심스레 물었다.


“얼마 전 찰리가 그렇게 떠났잖아. 외동인 아들을 잃고 찰리네 엄마가 정말 많이 힘들었나 봐. 내가 듣기론, 그전에도 워낙 조용하고 말수가 없어서 얌전한 사람인가 보다 했는데 말이야. 글쎄 우울 증세를 원래 가지고 있었다지. 이번에 아들을 그렇게 보내고 견디다 못해 어젯밤에 수면제를 많이 먹고 안 좋은 시도를 해서 응급차가 와서 찰리 엄마를 실어 갔었어.”


“어떻게 그런 일이. 찰리네 아버지는 같이 없었어?”


“찰리 병원비로 그 집 재정이 지금 완전히 동나서 전기도 끊길 지경이래. 그러니 어쩌겠어. 아저씨는 다시 잡화점을 열고 기운차려 살아야 하니까. 오늘부터 다시 가게를 열려고 어제 오후부터 정리를 하러 잡화점에 간 거지.”


론의 어머니가 설명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어떤데?”


제이미의 엄마가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려 했다.


“맞아. 문제는 그게 아니라, 이 문제 때문에 온 거야. 론의 어머니가 응급실에 가서 안정을 취하고 검사를 받는 도중에 위에서 종양을 발견해서 수술을 받아야 한 대. 그런데 듣자 하니 그 액수가 적지 않은 액수가 될 것 같아서.”


론의 어머니가 내막을 잘 이유는 론의 아버지가 마을 병원 의사이기 때문이다. 찰리네 부부에게 일어난 응급실의 일들은 론의 아버지네 병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찰리네 부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내에게 그 소식을 전해주었던 것이다.


론의 어머니가 이어서 말했다.


“오늘 남편에게 중요한 물품을 전해주러 병원에 갔다가 찰리 아버지를 잠시 만났는데, 말이 아니지 뭐야. 내가 안타까워서 원.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앉아있어서 자세한 건 묻지도 못하고 돌아왔어. 오는 길에 지난번에 ‘함께 도울 수 있는 게 없냐’는 제이미의 말이 떠올라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모금을 해서 찰리네를 도우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이렇게 달려왔어.”


론의 어머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이미의 아버지가 귀가하신 것이다. 제이미는 아버지를 보니 괜스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눈물을 꾹 참은 채 아빠에게 인사했다.


“다녀오셨어요, 아빠.”


“응, 내 딸. 어이구, 손님이 와계셨네요.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숙녀분들의 대화 시간을 제가 깬 건 아닌가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바쁜 제이미 아빠는 반갑게 인사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상의할 게 있어서 잠시 왔어요.”


론의 어머니가 웃으며 차분히 대답했다.


“여보, 여기 좀 앉아봐요. 안 그래도 여보 하고도 상의해야 할 문제예요.”


“그래? 무슨 심각한 일이 있길래 다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거야. 무슨 일이야?”


제이미 아빠의 물음에 론의 어머니는 더 힘 있고 실감 나는 목소리로 찰리네 소식을 속속히 말해 주었다. 론의 어머니가 엄마에게 말할 때와는 다르게 아빠에게 말을 하는 것을 바라보며 제이미의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아빠는 제이미가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해결해 주었다. 다 해결해 줄 것만 같은 마음에 제이미는 잠시 안도했다.


“어느 정도 모금을 할 생각이신 건가요?”


제이미 아빠가 물었다.


“최소 500만 원이요.”


“적지 않군요. 제 생각엔 이 문제는 우리 두 가정만이 아니라, 마을 모금으로 모아서 돕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러면 더 많은 액수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네. 그 생각도 해보긴 했는데. 찰리 아빠가 자기 집안 사정이 많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까 봐서요. 괜찮을까요?”


“괜찮을 거예요. 아픈 게 잘못도 아니고. 어려울수록 함께 도와야죠. 이제라도 알았으니 모두 도와야죠. 그리고 찰리 아빠도 아내를 위한 일인데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네요.”


“들어보니 그렇네요. 좋은 의견을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제가 찰리 아버님께 말씀드리고 마을 회장님과 상의해서 내일 당장 모금을 시작해야겠어요.”


론의 어머니가 희망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빨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서둘러 제이미의 집을 떠났다.


저녁 시간. 제이미가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사실 제가 오랫동안 찰리 아저씨네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이렇게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생겨서 오늘은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착한 제이미. 그런 생각도 할 만큼 네가 이렇게 커버렸구나. 걱정하지 마. 이건 어른들이 함께 도울 수 있는 문제니까 너는 편히 마음을 갖도록 해.”


제이미 아빠는 그런 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오랜만에 아이같이 아빠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제이미는 방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책상에 앉아 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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