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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Oct 22. 2024

따뜻한 봄날 아래 (7)

다음 날, 제이미의 등굣길은 다시 행복해졌다. 통통 튀며 쌀쌀해진 아침 공기도 상쾌하기만 했고 좀 더 두텁게 껴입은 외투도 따뜻하게 느껴져 예감마저 좋게 느껴졌다. 가을을 가장 좋아하는 제이미의 이번 해 가을 역시 특별한 시간으로 매듭지어지길 바라며 그녀는 성실하게 학교에서의 일과를 잘 마쳤다.


설레는 학교 길, 시골길을 거의 뛰다 싶게 빠른 걸음으로 제이미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혼자 제이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엄마, 어서 가요! 근데 론의 어머니는요?”


“잘 다녀왔니, 제이미? 오전엔 론의 어머니와 구역을 나눠서 했단다. 우리가 론의 어머니 쪽으로 가서 같이 합류하면 돼.”


제이미와 제이미 엄마는 차를 타고 나섰다. 창밖을 보니 찰리네 집이 보인다. 그곳에 환한 빛이 켜지는 날이 오길 바라며 모금을 하러 가는 제이미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론의 어머니가 보이고 우리는 그녀에게 향했다. 가까이 갈수록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발견한다. 엄마도 무거운 공기를 알아채셨는지 서둘러 그녀에게 달려갔다.


“우리 왔어.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모금하다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말을 잇지 못하는 론의 어머니. 그녀의 눈물만이 무언가 큰일이 있었음을 짐작케 해 주었다. 거리에 있는 벤치에 그녀를 앉혔다.


“무슨 일이야?”


제이미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물었다.


“어쩜 좋아. 찰리 엄마가 수술을 하다 잘못 돼서...”


긴 정적이 흘렀다. 제이미 엄마가 눈물을 흘렸다. 제이미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소리 없이 터져 나온 눈물로 고통을 함께 했다. 이들은 잠시동안 벤치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저물어 가는 보라색 하늘을 바라만 보았다. 한참을 말없이 그들은 슬픔에 빠졌다. 그러다 침묵을 깨고 제이미 엄마가 결단하듯 말했다.


“오늘 저녁에 하기로 한 모금은 마저 하자.”


“그러는 게 좋겠어.”


론의 어머니가 힘없이 대답했다.


찰리 어머니는 그렇게 찰리를 따라 멀리 갔다. 작은 종양으로 알았던 위에 있는 종양은 수술실에 들어가 보니 작은 종양이지 않았다. 종양을 제거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그렇게 다 제거하지 못하고 다시 수술을 잡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오늘 수술을 마무리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대로 숨이 멎었다.


제이미는 좀 전에 일어났던 이 생생한 소식을 듣기엔 너무 버거워 보였다. 그녀는 슬픔을 힘껏 누르고 엄마와 론의 어머니 뒤를 따라갔다. 저녁 모금을 위해 처음 만난 사람은 찰리네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였다. 찰리네 집에서 거리가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론의 어머니와 제이미 엄마는 그녀가 자신들과 같이 슬픔을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슬픈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로 그녀를 만났다.


“루나! 잘 지냈어요? 이런 일로 만나게 되어 참...”


론의 어머니가 인사했다.


“다들 표정이 왜 이렇게 울상이야? 무슨 일이야?”


그녀가 대답했다.


론의 어머니와 제이미 엄마는 그녀가 찰리네와 가장 가까이 살아서 가깝다고 생각했는지 그녀 앞에서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자초지종 모든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찰리 엄마가 이제 세상에 없다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이 마지막 모금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루나 아주머니의 반응은 두 엄마의 예상을 다 빗나갔다. 그녀는 찰리 엄마의 일보다 오히려 이 둘을 위로했다. 찰리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안타까워했지만 이미 수슬이 끝났기에 모금은 하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을 은근슬쩍 내비치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태도로 무언가 자연스럽지 못한 이 상황에 론의 엄머니와 제이미 엄마, 그리고 제이미는 슬픈 내색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의 약속된 만남들도 상황은 다 마찬가지였다. 찰리네와 그래도 친분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과의 약속을 오늘 저녁에 다 만들어 두었기에 그래도 기대를 제법 해보았는데 두 엄마의 저녁에 대한 기대는 완벽하게 수포로 돌아갔다. 모두 찰리 엄마가 떠난 이상 모금을 해야 할 이유 역시 없어져 버렸다는 의사를 내비치었다. 찰리 엄마의 소식을 안타까워했지만 슬퍼하진 못하는 그들이었다. 찰리 아버지를 걱정했기만 그와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하여는 깊게 생각하고 싶어 하지는 않아 했다.


두 엄마는 찰리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모두 앎에도 시큰둥한 아니 미지근한 이들의 태도는 두 엄마의 뜨거운 마음을 더욱 차갑게 몰아세웠다. 제이미도 이 모든 걸 함께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제이미의 마음속엔 조용히 숨겨져 있던 분이 점점 차오르기 시작했다.


마지막 약속을 끝낸 후 세 사람 모두 침묵을 일관하며 이틀 사이에 어느새 정이든 모금함을 안고선 제이미네 집으로 돌아왔다. 론의 어머니와 제이미 엄마는 서로를 위로하는 눈빛을 보냈고 한참을 함께 찰리 엄마를 위했다. 그러다 다시금 희망을 가져보려 마음을 정리했는지 론의 어머니가 말했다.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 우리는 최선을 다했으니 된 거지.”


“우리가 생각했던 거보다 찰리네가 사람들을 정말로 잘 안 만났나 봐. 어쩌면 당신이 가장 친했던 이웃이었을 수도 있어.”


제이미 엄마가 론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러게,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떠났으니 모금을 할 타당성이 없어졌다는 표현은 너무나 슬프게 느껴졌어요. 사람이란 존재가 이렇게도 이성적인 존재라니. 나는 아직 마음이 아파서 정신을 못 차리겠는걸요. 내일 우리 병원으로 가기로 했으니 우선 집에 가서 좀 쉬어야겠어요. 제이미 엄마, 수고했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어서 가서 오늘은 좀 쉬어. 내일 내가 당신 태우고 갈게. 그리고 모금함이랑은 다 두고가. 나머지 모금액은 내가 오늘 정리하고 잘 테니 오늘 가서 푹 쉬어.”


제이미 엄마가 그녀를 토닥이며 배웅했다.


“저도 올라가 볼게요.”


심상치 않은 제이미의 표정을 엄마는 보지 못했다.


“그래, 제이미. 수고했어. 쉬렴.”


제이미 엄마도 너무나 지친 하루였기에 서둘러 제이미도 올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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