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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Oct 16. 2024

따뜻한 봄날 아래 (2)

'왜 우셨을까?‘


오늘도 남색 넥타이를 하고 오신 테일러 선생님을 보아도, 재밌는 이야기라며 열심히 말해주고 있는 톰의 이야기를 들어도, 아침에 목격한 그 장면의 생생함을 떨쳐내려 수학문제를 집중하여 풀어보아도 아무 소용없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든 이 질문은 사라지질 않는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묵직한 아픔이 찾아왔나 보다. 오전 시간 내내 불편한 마음을 한 채로, 제이미는 어느새 하교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학교가 끝나고 다 쓴 지우개도 새로 살 겸 오늘은 꼭 잡화점에 들려볼 생각이다. 그리고 아저씨가 괜찮으신지 확인해 봐야 마음 편히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수업이 이렇게도 집중이 안 될 수도 있다니.’ 모범생 제이미는 새로운 자신의 모습에 새삼 놀라며 하교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제이미! 오늘 학교도 좀 일찍 마쳤는데 우리 집에 놀러 갈래?” 


새런이 말했다. 


“아니, 미안 나 오늘은 가볼 데가 있어, 새런.”


“어디?”


“학교 앞 잡화점. 지우개 사야 돼.”


“그거야 사고 가면 되지. 그게 뭐 대수라고.”


“미안, 오늘은 잡화점만 갔다가 집에 갈래.”


“알았어, 다음에 놀지 뭐. 제이미, 오늘따라 좀 이상해. 괜찮지? 웃어 제이미! 내일 보자.”


새런을 일찍 보내고 제이미는 잡화점으로 달려갔다.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고, 집화점을 들어가려 하는데, 문이 닫혀있다.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 쉽니다.”


멍하니 서서 문 앞에 떡하니 붙여 있는 공지를 읽는다. 오늘따라 유난히 제이미의 발걸음이 자주 멈춰 선다. 아쉬운 얼굴을 하고 그녀의 얼굴이 또 한 번 숙여졌다. 그 아쉬움이 단지 지우개를 사지 못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한참을 서성이다 제이미는 집으로 향하는 그녀의 시골길을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하굣길은 늘 즐겁기 마련인데, 오늘은 썩 그러할 기분이 못된다. 잡화점 아저씨의 집을 지나쳐 집에 도착했다. 


“엄마,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하고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거실에 수다 떠는소리가 들린다. 옆집 론의 어머니가 와계신다. 


“제이미, 학교 잘 다녀왔니? 가방 놓고 내려오렴.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 뒀어.”
 

엄마가 말했다. 


“제이미, 잘 지냈니? 부쩍 예쁘게도 컸구나. 우리 론이도 너처럼 내게 다정히 대해주면 좋으련만. 영 그럴 마음이 없어 보여. 하하.”


론의 어머니가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제이미에게 안부인사를 건넸다.


“감사해요, 아주머니.” 


제이미는 짧은 인사와 함께 힘없이 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잠시 책상에 앉아 노란색 다이어리를 펴고 답답했던 오늘의 마음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왜 답답한지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제이미는 그저 다이어를 써 내려갔다. 


 10월 7일 월요일 

 기분 좋게 학교를 나갔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게 집에 돌아왔다. 

 마음이 좋지 않다. 

 잡화점이 문이 닫혀 있어 지우개를 사지 못했다. 

 지우개도 사지 못했지만, 사실 오늘 아침 잡화점 아저씨가 울고 있는 것을 본 것이 자꾸 기억에 남아 기분이

 썩 좋지 못한 것 같다. 

 엄마와 론의 어머니가 재밌게 대화하며 웃으시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뭐가 그렇게 재밌으신 걸까? 

 보통 같아선 내려가서 같이 웃고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내가 지금 이렇게 우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 없는 질문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람. 

 어찌 됐건 지우개는 내일 다시 사면되고, 아저씨는...

 하나님! 아저씨가 왜 우셨는지 모르겠지만 아저씨가 울지 않게 위로해 주세요! 

 그래, 이로써 됐다. 

 우선 당장 내일 있을 쪽지 시험이나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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