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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Oct 24. 2024

따뜻한 봄날 아래 (9)

모금 덕분에 사람들이 소식을 많이 들어서인지 찰리네 엄마 장례식장엔 조문객들이 많이 찾아왔다. 가장 걱정스러웠던 찰리 아버지도 슬픔을 같이 해주려 찾아온 생각보다 많은 조문객들을 보고 기운을 내며 그들과 처음으로 함께 대화도 하고 위로도 받았다. 한쪽에선 모금액을 전하려 론의 어머니와 찰리의 아버지가 만났다. 


“찰리 아버님, 마음이 많이 어려우시겠지만, 모든 이웃들이 함께하고 있으니 힘내세요. 그리고 이건 그 마음이라고 생각하시고 받아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너무 견디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오늘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시고 이런 도움까지 함께 해주시니 감사해요. 덕분입니다.”


봉투가 제법 두꺼운 걸 보고 당황한 기색으로 아저씨가 물었다.


“근데 너무 많은 금액인 것 아닙니까? 이러시면 조금...”


손사래를 치며 론의 어머니가 말했다.


“사실 저도 조금 놀란 일이 있었어요. 원래 이 금액에 반도 채워지질 못했는데,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끝난 모금함에 반도 넘는 액수를 채워놓았어요. 저희도 보고 놀라서 잘못 넣었나 싶었는데 금액을 보니 액수도 크고 딱 떨어지는 액수도 아니고 정말로 누군가가 찰리네를 응원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어서 저 역시 감동을 받았어요. 물론,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만. 하하. 그러니 함께 힘내요.”


먹먹한 감동을 느낀 잡화점 아저씨의 눈빛이 잔잔하게 빛이 났다. 


“예. 감사합니다. 이렇게 위로를 받네요.”


잠시 후, 제이미네 식구도 찾아왔다. 제이미 가족은 차례로 아저씨께 위로의 말을 건넸다. “론의 어머니와 함께 저희 가족을 위해 마음 써주셨다는 것 들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일이 정리되고 다 함께 식사라도 하시죠.” 


잡화점 아저씨가 말했다. 


“네, 그럼요. 마음 잘 추스르시고 힘내세요.”


제이미 아빠가 말했다. 


“제이미, 잘 지냈니? 이렇게 와줘서 고맙구나.”


“네, 아저씨. 힘내세요”


옅은 미소로 제이미는 말을 아꼈다. 


장례식장엔 찰리네 엄마가 떠난 당일 저녁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 와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려 하는 것을 멈추고 제이미는 찰리네 엄마를 위해 기도하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혼자 남을 찰리네 아빠를 위해 기도했다. “죽음”이라는 것이 사람에겐 참으로 아픈 일이지만 인생에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사건임을 그곳에 있으며 직시했다. 그리고 정말 많은 것을 깨달은 가을 하늘 아래에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없었지만 제이미는 앞으로도 자신의 마음을 지킬 것을 다짐 했다. 자신의 기쁨과 미소와 마음속에 있는 그 뜨거운 것을 식히지 않을 것을 말이다. 


그날의 장례식이 끝나고 모두가 제자리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찰리네 소식은 더 이상 없었다. 하지만 잡화점 아저씨의 소식은 새로이 시작되었다. 


아저씨는 이전에 살던 집을 정리했다. 그리고 잡화점 안에 있던 방으로 자신의 모든 짐을 옮겼다. 그리고 잡화점 문을 다시 열었다. 


잡화점 문 앞에 ‘OPEN’으로 바뀌어진 푯말은 학생들에겐 가장 반가운 소식이었다. 돌아온 아저씨가 이들의 일상에 있던 허전한 구멍을 다시 채워 주었다. 학용품을 사러 저 멀리 가는 것이 불편했다던 아이, 이곳에만 파는 노트가 사고 싶었다던 아이들, 이전에 있던 과자가 사라졌다면 투덜대는 아이까지. 이전보다 훨씬 더 시끌벅적한 등하교 시간이 아저씨에겐 생동감을 가져다주었다. 


가족의 부재가 여전히 매일 느껴지지만 아저씨는 아이들과 함께 다시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했다. 참 솔직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솔직해지려 노력했다. 그는 아침에 있을 아이들의 등교시간이 기다려졌기에 다행히 밤에 잠은 잘 잤다. 


그에게 유독 힘든 시간이라면 하교가 완전히 마쳐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없는 시간. 저녁이 오기 전 해 질 녘의 오후 7시 즈음. 사람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 저녁 먹는 시간이 그에겐 유독 힘든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제이미. 하루가 가고 모두가 잠에 들기를 기다리는 밤이 코앞까지 다가온 저녁 7시의 보라색 하늘을 보기 위해 종종 밖을 나서는 제이미는 그 시간 시골길을 따라 잡화점에 한 번씩 들러 아저씨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엄마가 챙겨준 먹거리를 배달하고 돌아오기도 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학용품을 가져다 놔달라며 단골만이 할 수 있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잡화점 아저씨랑 제법 친해진 제이미는 이제는 가족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아저씨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지만, 금세 자기 얘기를 하며 아저씨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고 아저씨의 옅은 미소가 돌아올 때에서야 안도하곤 했다. 


어리지만 마음을 위할 줄 아는 제이미의 따뜻한 마음씨가 성장해 갔다. 


슬픔의 웅덩이에 빠질 듯 빠지지 않는 잡화점 아저씨, 그리고 그러한 그를 돕는 보이지 않는 신의 마음을 읽었는지 제이미는 그와 같은 마음에 힘입어 더욱 활기차게 자신의 일상을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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