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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Oct 25. 2024

따뜻한 봄날 아래 (10)

“누구나 마음 하나쯤은 가지고 계시지요?”


마이크 너머로 울리는 테일러 선생님의 말이 내 마음을 울린다. 마음이 반응하는 걸 보니 나도 그 마음 하나 가지고 있나 보다. 오늘도 열심히 적어 내려가는 필기 위에 내 하루도 나지막하게 흐르고 있다. 정적을 감싸는 무거운 공기가 다시금 햇살 아래 따뜻함을 느끼다 보니 이제는 그만 집에 가라는 알람 소리가 울린다. 


12월 올해 겨울을 시작하는 날, 제이미가 꿈에서 깨어나 너무나 선명한 그 꿈을 다시 곱씹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묵직한 울림에 깨기 싫은 꿈이었지만 뒤척이며 일어나서는 일층으로 내려가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려 가만히 창밖을 보고 있다. 어느새 이슬이 맺혀 있는 나뭇잎을 뒤로하고 참새들이 줄지어 앉아있다. 저마다 목소리 높여 우는 참새들을 보고 있으니 씽긋 미소가 지어진다. 


‘누구에겐 이렇게 평화로운 하루가 오늘도 주어졌는데 모두에게 그렇진 않겠지? 무엇이 더 유익한 인생일까? 때론 고난도 유익이라 하는 어려운 말을 들어보긴 했는데 과연 그럴까? 슬픔 뒤에 오는 기쁨은 값진 기쁨이라 고백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유익일 수도 있겠다.’ 


변함없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변함없이 따뜻한 아침의 이 시간들은 제이미에겐 무엇을 의미할까. 부디 밋밋한 시간들이라 여기지 말기를. 제이미는 이런저런 상념들을 다시 한번 곱씹어가며 결국엔 이 가득 채운 아침의 순간을 잡으려 애쓰다 아침부터 무거운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번뜩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학교 갈 준비를 한다. 


‘누구나 마음 하나쯤은 가지고 계시지요?’


꿈속에서의 테일러 선생님의 질문이 제이미 역시 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뭔진 모르겠지만 부자가 된 기분을 안고 집을 나섰다. 


첫눈이 오는 날. 저녁 7시. 그 시간 제이미는 엄마가 쪄준 따뜻한 군고구마를 소중하게 품은 채 잡화점으로 향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도 잘 지내셨어요? 첫눈 오는 기념으로 선물 가져왔어요. 엄마가 따뜻한 군고구마 가져다 드리래요.”


함박눈과 함께 함박웃음을 지으며 제이미가 말했다. 


“고맙구나, 제이미. 오늘은 나도 선물을 준비했다. 이거 네가 제일 좋아하는 학용품 맞지? 새롭게 나와서 제일 먼저 빼뒀단다.”


쓸쓸함을 뒤로하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아저씨가 말했다. 


“신난다. 감사해요 아저씨. 그런데 오늘은 기운이 없어 보이시네요.”


아저씨의 표정을 금방 눈치챈 제이미가 차분하게 말했다. 


“그러니? 눈이 와서 그런지 그리운 게 많구나. 사람의 빈자리라는 게 참 크구나, 제이미. 사람의 빈자리가 너무 커.”


그 순간, 제이미는 얼마 전 꾼 꿈이 생각나서 자신도 모르게 테일러 선생님의 질문을 떠올리며 아저씨에게 엉뚱한 대답을 했다. 


“마음이 사람보다 커요.”


“마음이 사람보다 크다고?”


“네, 아저씨. 마음이 사람보다 커요. 사랑하는 마음이 사람보다 크고요. 누구나 가진 마음을 따뜻한 마음으로 채우면 슬픈 사람도 힘든 사람도 다 괜찮아질 수 있어요. 그러니 살 수 있어요.”


따뜻한 마음을 오랫동안 품어온 제이미가 엉겁결에 아저씨를 위로했다. 다독였다. 


“제이미. 따뜻한 군고구마 함께 먹자꾸나.” 


아저씨는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눈 오는 날에 따뜻한 군고구마란! 환상 조합이죠?”


어쩌면 이들은 모양은 달라도 같은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눈 오는 이 풍경과 따뜻한 이 고구마를 모두 좋아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들의 우정이 새롭게 시작되길. 이웃을 향하여 따뜻하게 피어나는 사랑이 오늘도 계속되길. 사람이 있는 곳엔 매일매일 피어날 수 있는 마음도 늘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창창한 미래를 맞이하는 새 해를 준비하는 모두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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