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돈도 못 벌면서 헬스 다니고 스터디카페도 등록하고 막 책도 사고.. 어쩌려고 그래?"
초5 둘째 딸의 애정 어린 잔소리. 장난이 섞여있지만 진심도 묻어있는 핀잔.
귀엽다.
"그러게. 어쩌냐. 너도 이제 사립학교 그만 가야 하나보다. 아빠가 돈 못 벌어서.."
"아. 그러니까. 진짜 어쩌려고 그리 돈을 펑펑 쓰고 다니는 거야."
(자본주의를 가르친 적 없는 둘째. 아직 돈 개념을 잘 모른다)
사뭇 진지한 표정이다. 자신의 생활이 아빠로 인해 피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눈치다. 그런 아이의 잔소리에도 나는 계속 희죽거릴 수밖에.
'돈을 펑펑 쓰고 다니는...'
헬스장, 스터디카페.. 고작 이게 단데..
"그러게. 아빠가 돈을 그렇게 많이 써서 큰일이네. 정말.."
아내가 둘째의 말을 장난기 있게 거들다가 노선을 변경한다.
"그런데, 돈을 펑펑 쓴다고 하는 건 그런 게 아닌데? 아빠는 꼭 필요한 것에만 소비를 하시거든. 아빠가 술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걸 본 적 있어?"
"아니. 우리 아빠는 그러면 큰일 나지. 교회사람들이 보면 어떻게 하려고.. 교회리더인데.."
"그래. 우리 가족 지키려면 건강해야 하고, 술이나 담배보다 책 읽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시니 엄마는 좋은데?"
"그치. 그래도 돈을 너무 쓰는 거잖아 아빤.. 책을 왜 사는 거야 아빤... 학생도 아니면서..."
맛있는 거 사주기 위해 내가 지갑을 열 때엔 결코 한마디도 하지 않던 둘째다. 얘는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를 여과 없이 하는 둘째가 너무 사랑스럽고 애틋하다.
교회에서 만나는 분들마다 질문 겸 탐문을 해주신다.
"김집사님, 그래서 이제 뭘 하시려고요? 아 능력도 훌륭하신 분이 그냥 계시면 되나..."
평소 존경하는 장로님들. 평균 60대 중반의 분들에게 소속감이란 매우 중요해 보인다. 나는 성의껏 답변을 드리고 내가 잘 대답한 건지 몇 번을 되짚어본다.
되짚어 보는 이유는 장로님들 입장에서 이해가 되게끔 내가 설명을 해드렸느냐에 대한 복습이다. 내 마음과 생각이 혼란스러워서는 아니다.
나에게 대인관계란 소통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라 여긴다.
남이 알아듯던 말던 생각을 쏟아내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 내게 관심이 있고 관심을 표현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소속이 중요한 60대 중반의 남자분들에게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겠는가.
거기부터가 소통의 시작인 거다.
이와 같은 질문은 거의 3개월째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고 있다.
계속 질문을 해주신다는 건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시다는 의미다.
일종의 소통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거지.
대학교수나 유명한 회사의 임원이 된 명함을 드리면
질문은 좀 줄어들 것이다.
가시화된 나를 보고 그들은 이해가 될 것이고, 나는 다시 척박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겠지.
그러니 장로님들과의 소통실패는 그대로 두기로 한다.
있는 힘껏 여유를 품고 있다. 여유를 부리지는 않는다. 여유는 지켜내는 것이다. 의도해야 가능하다.
여유만큼 마음을 지키고 생각을 추진하는 데에 중요한 동력이 또 있을까.
여유가 있어야 나다움을 풍길 수 있다.
좋은 의사결정과 양질의 기회들은 내 마음속의 풍요가 가득할 때 찾아온다.
내가 나를 충분히 돌보고 있다는 확신.
여유가 있어야 남도 돌아보고 돌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