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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엘 Sep 19. 2023

당신의 실행력에 자극을 주는 글

반장선거에서 옆차기!

서점에 갔다.


'수필을 쓰는 방법'을 담고 있는 책을 뽑았다 넣었다 하길 열두어 번.. 옆에는 선별해 놓은 수필집 몇 권이 놓여 있다.


'과연 내가 접근할 수 있나?'


'에잇! 그냥 쓰자! 하면 되지 머'


초등학생 때 글짓기로 상 한번 받아 본 적이 없는 나였다. 나보다 훨씬 못쓰는 친구들도 상 한 번씩은 받아봤다던데, 난 상복이 아예 없었다. 그림 그리기는 말할 것도 없고, 달리기도 못했다. 음표를 볼 줄 몰라서 음악시간은 늘 고통스러웠다.


그 어린아이가 나중에 뭐 해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을 다 했었다. 글 못쓰고, 그림 못 그리고, 운동 못하고, 연주할 수 있는 악기 하나 없으면 초등학교 때엔 그냥 꽝인 거다. 인기도 없고 주목도 못 받는다. 내가 평범한 아이여서 라기보다 평범해질 수밖에 없는 수준을 갖고 있어서 였을까





이대로 그냥 이렇게 살다가는 내 인생이 금세 바닥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5학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서예를 배웠다. 정규수업은 아니었고 선생님이 방과 후에 얘들 몇 명 모아서 그냥 해주시는 수업이었다. 일종의 선생님 취미를 함께 하는 것이었다랄까.


선생님도 서예 전문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를 가르쳐 주셨다. 나는 서예도 잘 못했다. 누가 못한다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스스로는 안다. 나는 이것에도 소질이 없구나..


대신 선생님 옆에서 열심히 먹을 갈았다. 물 살짝 넣고 적당히 팔에 힘을 주어 돌과 돌사이에 마찰을 일으키는 작업. 향이 좋았다.


방과 후였기에 친구들은 운동장에 남아 야구를 하곤 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야구를 못하니까 나도 그곳

끼어있길 원치 않았고 친구들도 나를 원치 않는 듯했다.   


아 정말 당시에는 남자아이 초등학생인데 운동 못하면, 인기는 물 건너간 거였다. 하루하루 한숨만 나왔다. 이런 나를 의식하셨는지 어머니는 날 태권도 도장에 보내시더니, 중학생 때엔 합기도, 고등학생 때엔 쿵후까지 가르치셨다. 격투운동만 시켰던 것에는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불안이 담겨 있다.


'곱상~하게 생긴 내 아들,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마라'  


다시 5학년 서예시간으로 돌아가서-

뒤늦게 알게 된 일이지만, 친구들은 내가 선생님 조교라도 된 줄 알았다고 했다. 서예를 배우는 아이들 대부분 자신의 한지에 글을 쓰고 있었지 나처럼 먹을 갈지는 않았으니, 그 모습이 내가 선생님의 보조가 된 것처럼 보였나 보다.


이런 오해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란 걸 6학년이 되고 알았다.



 



6학년이 된 나는 삶의 엄청난 진리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잘해서 하는 게 아니라, 일단 하니까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진리이다.


그저 선생님 옆에서 먹을 갈기만 했을 뿐인데, 친구들이 나를 선생님 서예보조로 알아서 레벨 업시키고, 더불어 나를 '서예천재'로 대하기 시작한 거다. 이 일은 내가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잘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하면 된다. 하고 나면 친구들에게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게 초딩때엔 완전 먹히는 전략이었다. 6학년이 되고 깨달아서 늦은 감이 없진 않았지만 나는 충분히 활용해보고 싶었다.


태권도 도장을 다니기 시작한 나는, 품띠를 취득한 일을 레버리지 하여 반장선거에 나갔다. 날 밀어주는 친구들도 별로 없다. 내성적인 내가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을 리 없지 않나. 그래도  까짓 거. 어차피 잘하는 것도 없는데, 떨어지더라도 일단 선거에 나가보는 거다.


하지만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큰 용기가 필요했다.


"저를 뽑아주신다면..."

연설을 시작했다.


친구들은 내가 하는 스피치 보다 내가 배우는 태권도에 관심이 있었다. 스피치가 끝나자 내가 품띠를 딴 사실을 아는 친구 몇 명이 태권도를 보여달라고 했다. 선거에서 태권도를?


"선생님! 쟤 이번에 검은띠 땄데요!" (검은띠 아닌데, 품띠인데...)


참고로 당시에 초딩은 검은띠를 주지 않았다. 품띠가 검은 띠나 마찬가지! 친구 말이 틀린 건 아닌 거지. 그래도 나는 쑥스러웠다. 반 아이들 앞에서 태권도를?


어른들 선거유세를 보면 연설만 하는 건 아니더라.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더라. 까짓 거.

나는 다시 용기를 냈다. 일단 하기만 하면, 하는 것 만으로 지금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겨내자!'


그러나 머릿속에 스치는 어머니 말씀!

어머니는 늘 내게 튀지 말고 보통만 하라고 하셨다. 반장 이런 거 하지 말고 평범하게 살라고 말씀하셨다. 그 소리는 내가 군입대 할 때까지 이어졌었고 무언가를 시도할 때 늘 발목을 잡곤 했다.


어머니는 내 아버지의 특출 난 아이큐로 고생하는 걸 경험하셨고, 큰아버지가 민주열사로 항쟁하고 쫓기며 가난하게 평생을 사시는 걸 경험하셨다. 어머니 입장은 그러하다. 초딩때에도 나는 어머니가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이해를 했다.


하지만 이해를 했던 거지, 수용하진 않았다. 솔직히 지금까지 어머니의 가르침과 정 반대로 살아온 것 같다. 평범하게 살기를 거부하며... 그 시작이 바로 6학년 반장선거였던 거다.


나는 단상에서 내려와 교실 출입구 쪽 빈 공간에 서서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옆차기를 했다. 도장에서 열심히 수련한 다리 찢기가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흰색 실내화가 심겨진 오른발이 교실의 천장을 향했다.


반 아이들은 열광했다. 글쓰기, 미술, 음악, 운동 모두 루저인 저 녀석이 태권도를 하다니.. 그것도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와 상황에서 옆차기를 날리다니..


친구들은 내가 태권도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모른다. 그저 지금의 모습! 60명 앞에서 과감히 옆차기를 날리는 담력에 놀란 것이다.


나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추가로 동작 한 가지를 더 해보기로 마음먹는다.

날라서 앞차기를 시도하다가 교실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창피했다. 그런 모습을 친구들은 박장대소하며 박수를 쳤다. 그날 이후 인기가 솟았다. 어떤 녀석은 몸이 날아올랐다고 진술했다. 또 어떤 친구는 오른발 엄지발가락이 교실천장에 닿았다는 말 같지도 않은 뻥을 쳤다.


시답지 않은 말들이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나는 일단 한 거다. 하니까 잘하는 것처럼 보인 거다.  


나는 반장이 되었다.


인기 있어서 뽑힌 반장이 아니고, 용기 내어 내 노력으로 이뤄낸 반장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전교에서 태권도 제일 잘하는 아이가 되었고, 반장이 되었기에 덩치가 큰 친구들도 나에게 결코 시비 걸지 않았다.





일단 하는 거다.

일단 하고 나면, 안 하는 99%의 사람보다 나아진다. 나아가게 된다.

일단 하고 나면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이후 중학교에 올라온 나는 중1 첫 번째 시험에서 반에서 일등을 했다. 봄소풍에 가서 오락부장을 하질 않나, 100명 앞에서 노래를 부르질 않나.


하지만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사춘기를 겪으며 나는 침울해져 갔다.  

중1 이후 계속 암흑기를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뚜렷한 인식이 내면에 각인되었다.


'그냥 하면 되는 거지.'


한 이십 년을 전문코치로 리더들을 코칭하고 강의하며 살아오고 있다. 능력이 되어서 했겠는가. 그냥 시작하니까 길이 열린 거다. 하지 않지 않았으니까 하게 되는 거고.


이렇게 오십이 가까워지는 나이에 에세이를 쓰고 있다. 쓸 때 감정이 좋으니 평생 계속할 것 같다. 글을 좀 더 세련되고 품위 있게 쓰고 싶은 욕구가 커지고 있다. 찾아서 공부하며 다듬어 가면 되는 거다.


그냥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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