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엘 Dec 05. 2023

하지 말아야 자유롭다

작은 일은 지나쳐야 하는 이유

하지 않을 자유



대형 쇼핑몰에 찾아가서 신발을 구매했다. 

'구두는 좀 무겁고, 운동화는 너무 가벼워. 이번에는 스니커즈를 신어보자.'


용도가 분명한 것이 좋다. 일할 때엔 구두, 운동할 땐 운동화.

스니커즈는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느낌.

이렇게 애매하면 구입목록에서 빠지는 거지. 살면서 스니커즈 살 일이 별로 없었다.


이번만큼은 일탈을 꿈꾼다. 좋은 스니커즈 한 켤레 신고 연말 모임에 편하게 다녀야지. 

기왕 사는 거 깔끔하면서도 트렌디하고, 점잖으면서도 반짝이는 걸 고른다.

(이런 게 있기나 할까 싶었는데, 있더라)


아내는 좀 더 심플한 게 좋다고 했지만, 나는 왠지 신발가게 사장님이 추천해 주는 화려한 것에 눈길이 간다. 

"가벼운데, 재질은 더 좋은 겁니다. 이걸로 하세요."

설득당한다.

신발가게 사장님은 화려한 언변과 논리들로 아내와 나를 무장해제 시켰고, 결국 카드가 긁혔다.


그런데 사이즈가 없다네, 아 난 이런 거 싫은데..

매장에 방문해서 구입하는 이유가 신어보고 좋으면 신고 가는 의미인데..


할 수 없이 주소와 연락처를 적어놓고 나왔다. 

사흘 뒤에나 집에 도착한다고 한다.

찝찝하다. 이럴 거면 인터넷 쇼핑하지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왠지 잘못 산 것 같다.



사흘 뒤에 도착한 스니커즈.


헐.


박음질 윗부분의 본드작업이 군데군데 안되어있다.


헐.


양쪽 모두 그렇다. 


흰색이라 티가 너무 난다. 나는 절망했다. 

"아.. 이럴 수가.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어쩌지.


나는 이후에 전개할 나의 일련의 행동들에 대해 아내에게 브리핑하기 시작한다. 


"전화해서 얘기를 해야겠어. 내가 사장님을 믿고 구입한 건데 이런 걸 보내시면 어쩌냐고. 그러면 뭐 그분은 자기가 보낸 게 아니고 공장에서 보내는 거라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겠지? 인성 좋은 분이면 사과도 할 수 있고. 그럼 나는 사과는 받되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거야. 택배비로 또 실랑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혜롭게 말해서 그쪽에서 부담하게 하는 걸로 또 잘 이야기해볼 거고.. 일단, 신발을 다시 박싱 해야겠어. 회수하러 택배는 언제 올까? 아 나 집에 없을 때 오면 어쩌지.."


왠지 나 혼자 떠드는 듯한 느낌.

말하다 보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일거리네.




아내가 말한다. 


"그냥 신어요. 그 정도면 별로 티도 안나. 그렇게 에너지 소모하고, 마음 쓰고 신경 쓰고 싶은 거야?"


"......"


"그냥 신어."


"... 어. 그래야겠네. 말하는 것만으로도 진 빠진다"


"큰 일 할 사람이.. 자잘한 거에 연연하면 되겠어요?"


"그렇지. 당신 말이 맞다. 신다 보면 아무렇지 않을 거 같긴 해."






다시 신발을 바라보았다.


그냥 신을만할 것 같다. 본드작업 군데군데 안돼서 그렇지 박음질은 튼튼하다. 

어차피 신다 보면 떼 묻고 구겨지고 뭐 그럴 거 같은데,

진빼지 말자. 


순식간에 마음이 편해졌다. 


뭘 자꾸 하려고 했단 말인가. 마음 편한 게 중요한 거지. 


뭔가를 하지 않을 자유가 있구나. 내게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자. 

;

;

;

신발 잘 신고 다닌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