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과 재활이 주는 유익
올해 3월에 발골절 수술을 해서 이십여 일 동안 입원했었다.
퇴원 후에 재활에 집중하며 지내오다가
11월 초에는 발골절 수술 부위의 핀제거 수술을 다시 했다. 이때 역시 동일한 병원에서 수술받고 입원과 퇴원을 했으며 12월 현재, 재활의 과정 속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 발을 디딜 때 여전히 아프다. 날이 궂으면 이전보다 더 쑤시고 아픈 느낌이 든다.
골절되었던 뼈가 굳었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매사의 움직임이 조심스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나의 일 년이 흐르고 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몸에 신경을 기울여 본 적이 없다.
하루 중 꽤 많은 시간을 건강에 집중하고 있다.
생각이 집중되니 깨달음도 깊어진다.
온몸 구석구석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다.
육체뿐 아닌 마음과 정신, 영적 건강에도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일부러 노력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자연스레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일 년간 나의 관심사는 온통 건강이었다.
자연스레 공부도 하게 되더라. 상식이 생기고, 배경지식이 쌓이면서 예전에 비해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오늘은 이들 중 한 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화
화내지 않는다.
아니, 화는 낸다. 하지만 회복이 빠르다. 화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엄청난 이득이다. 묵은 감정으로 진화하는 과정이 거의 없다. 덕분에 남을 오해하거나 곡해하는 의식이 사라져 갔다.
화는 감정일 뿐이라 휘발되어 사라질 줄 알았건만, 공부해 보니 천만의 말씀. 화는 스트레스로 향하는 고속도로다. 프리레디컬(활성산소)이 세포를 공격하고 노화를 촉진한다.
각종 병들을 만드는 원인은 마음! 화가 일등 공신인 셈이다.
이런 건 상식인데 화내면 안 좋다는 걸 누가 모르겠나.
단언컨대, 알지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면 그건 모르는 거나 다름없다.
화는 관리할 수 있다. 관리라는 것이 다분히 의도적인 일이기에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관리하면 좋은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관리하기를 선택하지 않을 뿐.
인간은 별 수 없다. 절실함과 간절함이 선택을 만들어 내게 마련이다.
깊이 깨닫고 절실해질 때 관리한다.
몸에 상해를 입히지 않는 이상 나는 건재할 줄 알았다.
자연스레 노화되어 갈 줄 알았다.
중력의 법칙에 의해 나이 들면 살이 처지는 것은 당연한 거고
자꾸 사용하는 신체기관들은 닳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거라는 상식은 있었다.
아는 것과 자각은 다르다.
나의 일 년은 자각의 연속이었다.
한동안 스스로 일어설 수 조차 없었고
통증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끝이 있는 싸움이라 되뇌었지만 끝나는 싸움이라도 과정을 겪는 일은 필수다. 겪어야 하는 거다.
그 겪는 시간 동안 자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했다.
깁스에 목발을 했을 때에 내 손은 다른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냉장고에서 김치통 하나 꺼내는 일조차 어려웠다.
나는 아내에게, 자녀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구차한 걸 싫어해서 혼자 뭘 자꾸 해보려다가
여러 번 그릇을 깨고, 엎지르며
나는 자각했다.
나의 성향, 선택, 의지, 관점..
나는 도움이 필요한 그저 사람일 뿐이었다.
가족은 내 전부이지만,
마음대로 대해서는 안 되는 존재임을..
불편하고 아플수록 뾰족해지지 않아야 함을..
자각했다.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화는 있어도, 화가 나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일임을 절박하게 깨달았다.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이건 뭐 거의 칠전팔기의 정신 아니겠나.
날도 추워졌고, 컨디션도 예전 같지 않다.
지난주에 처갓집에서 김장을 하며
디모도(서포트)를 하는데, 매년 하는 일인데도 이번에는 몸이 가볍더라.
발은 불편했지만, 마음은 편했다.
핀제거 수술 후 꽤 오랜 시간 운동 공백이 있었음에도
체중이 불거나, 체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3월부터 11월 동안.
내게 있었던 수많은 자각의 순간들.
그 시간들이 앞으로의 삶에
든든한 재산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