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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나도 나랑 사는 게 힘들어

by 윤지민

“더 이상은 못 하겠다. 내가 더 이상 감당이 안 돼.”


아이의 백일. 시부모님이 아이를 보러 집에 오시기로 했다. 멀리 사시는 시부모님이 아이 백일이라고 미리 보내주신 박대가 문제였다.


어린아이를 키우던 시절 매일 같이 나는 밤마다 잠을 못 잤다. 워낙 잠에 예민한 아이라 새벽에 자주 깨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렇게 아이 울음소리에 한번 잠이 깨버리면 다시 잠들기가 너무 어려운 나인지라 매일 수면부족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항상 그랬듯 전날 밤을 꼴딱 새우고 아침부터 나름 백일상을 차린다고 더더욱 정신이 없었다. 아침에 주문한 백일떡과 전날 끓여둔 미역국으로 상을 차리고, 시부모님이 오시면 미리 신경 써서 보내주신 시댁 지역 특산물인 박대를 구워 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남편은 기차역에 시부모님을 모시러 나갔고, 나는 칭얼대는 아이와 백일상을 차리겠다고 애썼다. 기름을 살짝 두르고, 중불로 지글지글, 껍질이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잠투정이 시작된 거다. 시부모님 오시기 전에 낮잠을 재워놔야 이따 컨디션이 좋을 텐데. 빨리 잠깐이라도 재워야겠다. 백색소음을 켜고 아이와 침대에 누워 토닥토닥 잠을 재웠다.


“으아아아아악!!!!!! “


남편의 비명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나와보니 주방이 이미 불바다가 되었다. 당황해서 사색이 된 시부모님과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소화기를 들고 와 불을 끄는 남편. 큰 소리에 잠이 깬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고, 나는 그 상태로 굳은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현실이 아닌 영화 속 장면을 보는 것 마냥,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119가 다녀가고, 준비한 백일상은 사진 하나 남기지 못했다.


“미쳤어? 애 있는 집에서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야 지금?”


새하얀 주방의 천장과 벽이 온통 새카맣게 그을렸다. 내 마음도, 남편과 나의 관계도 그날 모두 활활 타버린 것만 같았다. 화가 난 남편과 자책하는 나. 나도 내가 싫었고, 나도 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그날 저녁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 호텔로 가버렸고, 나는 탄 내가 진동하는 집에서 홀로 밤새 울었다. 아직도 시뻘건 불꽃이 눈앞에 아른거리던 밤, 홀로 보내던 그 새카만 밤은 내가 나에게 주는 벌이었다.


“나는 더는 못 견디겠어. 너는 애보다도 정신이 없어.”


“그걸 왜 이제 와서 탓해? 그걸 알고도 결혼했잖아.”


“이제는 진짜 지긋지긋해. 너를 감당하는 것도 한계야. 산만하고 정신없어서 나까지 미쳐버릴 것 같아. 너랑 사는 게 힘들다 진짜.”


“나도 나랑 사는 게 힘들어! 나보고 더 어떻게 하라는 거야!”


결국 이혼 도장을 찍었다. 다행히 양육권은 가져올 수 있었다. 나도 그때만 해도 번듯한 직장이 있었고, 아이에게는 엄마의 존재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해 주었다. 나 같은 엄마라도 엄마로 봐주었다는 게 감사한 일이었지만, 그런 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보기에는 정상의 엄마로 보여야 안전하게 양육권을 확보할 수 있었으니까. 내가 더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마저 빼앗길 것 같아서,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입술을 깨물고 노력했었다.


아이의 백일 축하 답례품으로 주문했던 연보라색 수건은 배송지 주소를 잘못 입력해 한참 후에 나야 받을 수 있었고, 결국 누구에게도 주지 못하고 내가 다 써야만 했다. 주소는 잘못 적었을지라도, 자수와 글자 폰트는 정말 세심하게 고민해서 만든 서른 장의 백일 축하수건을 이고 지고 홀로 아이를 키웠고, 이 수건을 볼 때마다 코에 진동하던 탄내가 떠오른다. 내 인생도 홀랑 다 타버린 것 같던 그날. 그날이 그렇게 불쑥불쑥 떠오른다.



* 현재 연재 중인 이 글들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창작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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