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정신없이 빨래를 개서 넣어 놓으면서 아이 옷장 안이 엉망이길래 정리를 시작했다. 정리해야 할 겨울옷도 아직 있기에 따로 빼놓고, 한데 뭉쳐 들어가 있던 내복과 속옷 등을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또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오늘 사실 여기 정리할 때가 아니라 내일 있을 면접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또 어쩌다 보니 이걸 시작해 버려서 이러고 있네.
오늘 오후에 아이 병원 건강검진이 있어 조금 일찍 하원해야 하는데 어느새 점심시간도 훌쩍 지나고 벌써 데리러 갈 시간이 다 되어간다. 시계를 보니 허기가 져서 대충 찬장에 있는 컵라면을 하나 꺼내 먹는다. 유튜브에 새로운 알림이 뜬 채널 영상을 하나 보면서 후루룩 라면을 먹고, 씻고 나갈 준비를 한다.
오늘도 결국 나를 위한 시간은 너무 부족하네. 면접 준비도 못하고, 밥도 라면으로 때우고.
뭐 한다고 이렇게 또 시간은 다 지나버렸지?
오늘은 아이 영유아 검진이 있는 날이다. 매번 알림 문자가 오는데 이번에도 3개월이나 늦어 버렸다. 소아과에도 예약을 하고 가야 하니 매번 잊어버리다 겨우 기억하고 예약을 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하원하고, 차에 태웠다. 병원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다 보니 시간을 맞추려면 살짝 빠듯한 상황이다.
“엄마!!! 엄마!!! 오늘 근데 나 왜 미술가운 없었어?”
“아, 엄마가 오늘 깜빡해서 그랬어.”
“미술가운 없어가지고 나만 비닐봉지 같은 거 입고했단 말이야.”
“미안미안, 엄마가 다음번에는 꼭 챙겨줄게.”
“엄마, 근데 그리고 오늘 있잖아~”
아이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핸드폰에는 왜 이렇게 오늘따라 알림이 많이 뜨는지. 핸드폰으로 내비게이션을 연결했는데 안내 소리가 작다. 하도 요즘 속도위반 딱지를 여러 번 끊어서 내비게이션 안내소리가 나지 않으면 불안해 소리를 키우려는데, 블루투스 알림에, 카카오톡 광고 알림에, 온갖 알림들이 화면을 가린다.
한 손으로는 핸들을, 한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내비게이션 설정을 조작하다가 빨간불 신호를 보고 멈췄다. 이때다 싶어 설정을 조작하던 중, 문자가 왔다. 내일 면접장소 변경에 대한 문자다. 장소가 변경되었다는 확인을 했으면 확인을 했다고 답장을 달라고 적혀있어서, 빨리 답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록불 신호를 받아 출발하면서 한 손으로 ‘네, 확인하였습니다.’라고 문자 전송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쾅!!!!!!!!!!!!!!
순간 차가 크게 흔들리며 정신이 멍해졌다.
놀란 아이의 울음소리가 귀를 찔렀다. 사고가 났다. 언젠가 한 번쯤은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진짜 일어나 버렸다.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옆에 떨어져 있는 핸드폰에는 ‘네 확인하였습니다’라는 문장이 반쯤 쓰여 있었다.
* 현재 연재 중인 이 글들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창작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