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장 난 게 아니었다
“ADHD를 가진 사람들의 머릿속은 흔히 ‘다중채널 라디오’라고 비유돼요. 한 번에 하나씩만 재생되는 게 아니라, 열 개, 스무 개의 채널이 동시에 울리는 것처럼 느껴지죠. 그 안에서 어떤 소리를 따라가야 하는지 구별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의사는 내 검사지 결과를 넘기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에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이건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에요. 실행 기능이라는 뇌의 체계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게 작동하는 거죠. “
나는 손끝을 조심스럽게 모아 쥐었다. 가끔은 한 가지 생각도 정리 못 한 채 멍하니 앉아 있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해야 할 일은 머릿속에 가득했는데, 어느 것 하나 손에 잡히지 않던 날들이.
“그러니까 당신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냥… 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 겁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울면 안 되는 건 아닌데, 울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교통사고가 나던 날, 도현이의 건강검진 문진표에서 내게 해당되는 것 같은 질문들을 발견하고 간호사에게 이건 무슨 질문들인지 물어보았다. 간호사는 ADHD 초기선별을 위한 질문들이라고 말해주었다.
성인에게도 해당이 되는 건가 싶어 ‘성인 ADHD’를 처음으로 검색해 보았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겠더니, 읽고 또 읽을수록 점점 선명해졌다. 다들 나와 닮은 이야기였다. 시간을 못 지키고, 정리를 못 하고,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실수와 자책이 많을 수밖에 없는 삶. ‘나도 그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처음으로 그동안 엉망진창이던 내 인생을 ‘내 탓’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싶은 희망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검색 끝에 정신과 진료를 예약했다. 별일 아닌 듯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한 뭉치의 검사지를 작성하고, 의사와의 면담을 진행했고, 진단을 받았다. 진료실을 나서던 나는 손이 조금 떨렸고, 입술 안쪽을 질끈 깨물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스스로를 조금 덜 미워하고 있었다.
나는 고장 난 게 아니었다.
다만, 아무도 내 설명서를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나조차도.
* 현재 연재 중인 이 글들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창작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