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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 Feb 18. 2020

5. 올 겨울에는 눈이 한 번은 왔으면 좋겠어

전원주택에 눈이 오면 1

예전에 재밌게 본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사라 제시카 파커 주연의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입니다.

매우 바쁜 펀드매니저인 주인공 '케이트'는 바쁜 업무 탓에 애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심지어 약속도 지키지 못합니다. 그것을 첫째 딸을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케이트와 화가 난 딸. 그때 케이트는 딸에게 '눈이 오면 같이 눈사람을 만들자'라고 약속을 합니다. 항상 정신없이 살던 케이트였지만 눈이 오자 모든 업무를 제쳐두고 딸에게 달려갑니다. 그 장면이 너무나 이뻤던 저는 나도 꼭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로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영화' 포토>

뿐만 아니고 겨울왕국 1을 보면 안나가 엘사에게 'Do you wanna build a snowman?'하고 물어보는 것도 너무 귀여웠습니다. 이 노래는 특히 저희 아들이 좋아해서 자주 들었는데요. 그때마다 '눈 오는 날'의 추억들도 떠오르고 그런 추억을 아들들에게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눈 그리고 눈사람에 대해서 남모를 로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겨울왕국 스킬텃>


그래서 평소에 정말 쉬지 못하는 저도

'눈이 오면 월차 혹은 반차를 쓰고 아들과 눈사람을 만들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제 전원주택으로 이사 온 마당에 우리 집 마당에서 잠옷 차림으로 일어나자마자 눈만 비비고 만드는 눈사람이라니 얼마나 로맨틱한가요?


그런데 올 겨울은 유난히 눈 소식이 없었습니다. 눈 소식이었다가도 매번 비가 왔습니다. '눈 예보'에 항상 기대는 되었지만 따뜻했던 이번 겨울 '비'로 바꿔 내리곤 했죠. 보통 비가 오고 나면 날씨가 추워졌는데, 그 후엔 날씨가 화창해졌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한 고민이라고 했죠. 전원주택의 단점이 추운 것인데, 다행히 이번 겨울이 따뜻하다 보니 전원주택에서 사는 단점을 느끼지 못하고 잘 지낼 수 있었죠. 특히 저희 집 앞에 언덕이 있는데, 누구는 눈이 와서 언덕이 얼어서 출근 못하면 어떡하지 라고 걱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전원주택을 사는 것이고, 겨울인데 12월 초부터 2월 중순인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눈이 안 왔다니 너무한 것 아닌가 섭섭하던 차였습니다.


지난주에도 역시나 날씨가 따뜻하더라고요. 코트 안 입어도 안 추울 정도로 따뜻했습니다. 비도 왔습니다. 오히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엔 양재 꽃시장에 가서 허브도 사 왔습니다. 금요일 일기예보에서는 토요일부터 추워진다고 했는데, 토요일도 따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눈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끝났구나 하는 생각에 눈에 대한 생각은 아예 접었습니다. 눈은 내년에 만나고 봄 준비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입니다.

양재 꽃시장, 정원꾸미기도 전원주택살이 버킷리스트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이 평소와 다른 기분이 들었습니다. 밖을 보았습니다. 세상이 새하얘진 것입니다. 기대도 안 하고 있던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눈이 정말 한 번도 안 오다 보니, 하루라도 와서 사진으로 간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사진으로 간직할 수 있게 눈이 내려준 것 같았습니다.

하필 남편이 어젯밤 동백나무를 밖에 내놨는데, 눈이 와버렸습니다.


소중한 눈이 내린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습니다. 눈이 더 이상은 오지 않고 있어서 녹기 전에 즐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벤치 테이블에 글씨가 쓰고 싶어 내려갔습니다.


제가 나가는 소리에 둘째가 맨발로 따라 나왔어요. 한 발자국도 아니고 저만큼이나 나왔다니 무식이 용감하다는 말이 떠오르는 상황입니다. 둘째에게는 눈이 처음 었을 텐데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습니다. 맨발눈을 밟았다니, 발이 정말 차가웠을 텐데 엄마가 보고 싶어서 나왔다고 생각하고 얼른 안아주었습니다.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고 양말도 신겨주었습니다.


얼마 전 눈은 아니지만 비가 온 후 계단이 얼어서 남편이 넘어진 적이 있어서 얼른 계단부터 청소했습니다. 눈이 더 이상 오지 않았고, 날씨가 춥지 않은지 눈이 금방 녹을 것 같았습니다.

비포 엔 에프터

아침밥을 맛있게 먹고는 온 가족이 함께 눈을 치웠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눈을 치우는 것도 놀이가 된 것 같았습니다. 눈 치우는 도구를 본인이 하겠다고 서로 다투었습니다. 첫째는 눈들을 모아서 눈을 던지는 눈싸움도 하였습니다. 역시나 눈을 기다려온 첫째는 눈을 본 강아지만큼이나 신나 했습니다. 조끼 하나 입고는 안 춥다고 옷도 안 입고 내내 놀았습니다.


덤프트럭으로 눈을 싣고 가겠다고 덤프트럭도 가지고 나왔습니다. "엄마 여기 눈 실어줘."를 백번은 한 것 같습니다. 답답해하는 아들들이라 장갑 사주고 올 겨울 한 번도 쓰지 못했는데, 오늘 뽕을 뽑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눈이 수북이 쌓일 정도로 많이 온 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애들이 즐겁게 놀 정도의 양의 눈이 온 것 같아서 고마웠습니다.


저의 로망이었던 눈사람 만들기는

'눈을 굴려서 눈을 굴려서 눈사람을 만들자.' 노래만 들으면 수월할 줄 알았는데 오늘 내린 눈은 손에 닿으니 녹아버리는 눈이었습니다. 그리고 잘 뭉쳐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쉽지만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눈과 코는 아들이 직접 찾아와 붙여 주었습니다. 울라프와 닮았다고 굉장히 만족해하였습니다.


아침에 눈이 왔는데, 날씨는 이렇게 맑았습니다. 눈이 더 올 것이라고 기대하기가 어려운 날씨지요. 한여름밤의 꿈과 같이 올 겨울 즐거운 추억을 준 눈 같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기대하던 눈이 내리니 애들보다도 제가 더 좋더라고요. 특히 주중에 눈이 내리면 월차라도 쓸 생각이었는데, 일요일에 눈이 내리니 하루 종일 애들과 놀아줄 수 있다는 게 정말로 좋았습니다. 특히나 최근 집에만 계속 있는 아이들이 지루해하던 차였는데 이보다 더 좋은 장난감은 없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후 눈이 더 오기 시작했습니다. 작정하고 눈이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둘째도 신이 났어요. 스케이트도 탔습니다. 저는 같이 놀아주기도 하고 거실에 들어가서 애들이 노는 것을 구경하니 그것도 좋더라고요.


날씨가 조금씩 추워지고, 날이 어둑어둑해지니 애들이 눈을 집으로 가지고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얼른 미술 놀이 매트를 꺼내 주었어요. 그래서 집에서도 눈싸움도 하고 만들기도 하고 다양한 놀이를 하더라고요. 눈으로 인해 하루가 꽉 찬 기분이 들었습니다. 평소에는 주말에 약속이 있었을 텐데 오늘은 운이 좋게도 특별한 약속이 없었던 것도 하느님의 선물이었던 것 같은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전원주택에 눈이 오면 생기는 일 두 번째 이야기는 곧 또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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