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나 강연에서는 20대가 꼭 해야 할 것 중 '여행'을 꼽곤 한다.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여태까지 살던 시야를 벗어나는 일이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만큼 나의 세상은 넓어지니까 사람들은 '떠나라'라고 말한다. 또한 일상이 비슷하던, '학교-학원-집'으로 이어지는 고등학교에서 벗어나 수능을 보고 시간이 자유로운 대학생이 되면 대부분 어디로든 떠난다. 국내든 해외든 이제는 쉽게 여행할 수 있는 시절이고, TV에서는 각종 꿀팁을 알려주는, 관광명소를 소개하는 여행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서점에만 가도 '여행 가이드북'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스무 살이 되어 10만 원이 있으면, 1박 2일 정도의 여유가 있으면, 국내 어디로든 떠날 생각을 하던 나는 2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여행이 예전만큼 새롭진 않다. 가볼 곳은 거의 가봤다고 자부해서일까, 아니면 떠난다는 것은 돌아온다는 것을 전제하기에 전보다 일상의 소중함을 알아서 일까. 이유가 어찌 되었든 떠난다고 나란 사람이 더 이상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혹은 시간과 돈의 부족이 만들어낸 결과일 수도 있다. 세계 여행이나 아니면 장기 여행을 떠난 이들의 책에서 흔히 서두로 언급되는 말도 '떠나면 내가 크게 변할 줄 알았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별로 없었다.'이다. 새로운 것을 맛보고 새로운 광경을 보는 것은 물론 가치 있는 일이지만 여행을 다녀온다고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얻거나 내 삶이 180도 변화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행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것보다 '여행이 가진 힘'을 믿고 싶다. 또 시간과 돈이 허락한다면 많은 곳을 구경하고 싶다. 어차피 죽으면 기억 못 할 이번 생이지만, 이번 생을 살아가는 동안은 기억할 테니깐.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으니깐. 어쩌면, 조금은 변화할지도 모르니깐.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삶이 '어쩌면'이라는 희망으로 조금 더 풍족해질 수도 있으니까. 매일은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가끔은 언젠가 떠날 곳으로 상상 여행을 한다. 오늘이 행복한 것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언젠가 이국적인 장소에서 웃고 있는 나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6개월씩 장기 여행을 떠나면 어떤 것을 챙겨서 떠날까 가끔 떠올려보기도 한다. 여행이 주는 설렘은 처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행이 일상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