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이라 쓰고 이사라고 읽는) 연대기
결혼을 한 뒤 이사 온 신혼집에는 안방과 옷방, 거실이 있다.
작은 문을 가진 붙박이 장이 하나 있는데 오래된 보일러의 배관이 아래 훤히 보여
어쩐지 나는 문을 여는 것을 싫어하게 됐다.
가끔은 그 작은 문 안의 작은 방을 상상한다.
작은 싱글 침대와 원목으로 된 앉은뱅이책상과 요가매트를 둘 수 있는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종종 생각한다.
지나온 나의 방들을 생각해본다.
7살 때부터 19살까지 살았던 우리 집 내 방에는 초등학교 때는 부모님께서 만들어준 긴 책상이 있었고 거기엔 정성스럽게 그려낸 각종 스탠실 그림들이 엄마의 손을 거쳐 콕콕콕 박혀있었다. 그땐 동생과 함께 방을 썼고 자주 싸웠다. 중학교 때 그 책상은 비전문가가 만든 가구의 여러 가지 한계로 버려졌고 덩그러니 함께 만들었던 책장만 남았다. 고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어디선가 가지고 온 나름대로 콤팩트한 책상과 싸구려 시트지를 바른 행거 겸 서랍을 사서 들여놓고는 뿌듯한 표정으로 노을 지는 방 안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다. 그 시간에는 책상에 앉아, 책장 안 가지런히 써놨던 일기장들을 꺼내 뒤적거리기도 하고, 공책에 쓸 없이 어른이 된 분명히 멋질 내 모습을 공상하고, 공부하는 척 교과서에 있는 시를 끼적거리기도 했다. 혼자 방 안에 있으면 밥 먹을 때 빼고는 가족들은 나를 자주 부르지 않았다. 충분히 혼자 있을 수 있었기에 충분히 끼적거릴 수 있었다.
대학을 가고 나서 1학년 때를 제외하면 2인실에서 생활했다. 매년 룸메이트는 바뀌었다. 친밀한 타인일 때도 있었지만 몇 평 안 되는 공간에서 1년간 같은 공기를 나눠 마시는 것 치고는 대단히 불편한 타인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작은 침대와, 때로는 엄마한테 물려받은 드리퍼로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마실 수 있는 책상이 있어 쓸데없이 스티커도 붙이고, 노트북으로 싸이월드 등지에 흑역사도 남기고, 잘 생긴 남자 생각도 하곤 했다.
취직하기 전 다시 본가로 갔을 때, 내 방은 마치 버려진 책상처럼 흉물스러운 창고가 되어있었다. 내 일기들을 들추니 작은 책벌레가 나왔다. 안방 앉은뱅이책상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력서를 썼고 엄마와 같이 잤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러웠다. 서러움이 내 방의 노을을 즐길 수 없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취직을 못해서인지 알 길이 없었다. 혹은 취직을 해야만 하는 건지 의문이 들어서 일 수도 있었겠지. 그렇게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와 잠들던 시간이었다.
취직을 하고는 회사 동료들과 사택에 2년 넘게 같이 살았다. 사택이 전셋집이라 함께 이사를 다니는 일도 몇 번 있었다. 우리는 그때마다 가위바위보 따위로 누가 큰 방을 쓸지, 누가 방을 같이 쓸지 따위를 정했다. 첫 해에 나는 선택권이 없었다. 회사에서는 나보다 선배지만 동갑이었던 지혜가 내 룸메이트였다. 지혜는 사택에 슈퍼싱글 침대를 사서 들여놓은 통이 큰 여자였다. 나는 소심하게 매트리스와 선물 받은 앉은뱅이책상, 그리고 이케아 원목 서랍을 들여놓았다. 지혜는 옷더미나 이불더미 속에서도 잘 자고, 아침에는 덕분인지 잘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먼저 자는 지혜를 흘끗 보고는 작은 내 책상에서 취직하고 산 맥북으로 영화를 보거나 블로깅을 하며 사회생활이라는 것에 침을 뱉고 싶어 안달을 했다.
회사에서 전보를 하게 되어 서울로 상경하며 자취를 시작했다. 첫 자취방은 작은 거실 수준의 공간 안에 부엌과 잠자리와 옷들을 끼워 맞춰 살아야 했다. 마치 테트리스처럼. 집 밖을 나서서도 매 한 가지였다. 지하철은 내 몸을 'ㅣ' 자 블럭처럼 수많은 블럭 사이로 딱 맞춰 들어가야만 나를 회사로 인도했다. 회사에서는 내 몸의 모양이 원래 어떻든지 간에 필요한 공간에 필요한 모양으로 들어가라 했다. 나는 'ㅁ'도 됐다가 'ㄱ'도 됐다가 'ㄷ'도 돼야 했다. 때로는 회사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모양이 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집에 오면 사택에서부터 쓰던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 책을 보고 드라마도 보고 오랜 시간 혼자 있었다. 다행히 자취방에서는 내 모양을 바꾸지 않아도 되었다.
결혼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살았던 자취방은 구불구불하고 좁은 언덕 위에 있는 2층 주택이었다. 나름대로 투룸에 거실과 부엌이 분리된 집이었다. 화장실 들어가는 문지방의 나무가 썩어있는 집이었다. 정당하게 살고 있으면서도 그 문턱을 넘을 때마다 지울 수 없는 이방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 집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첫 해 여름에는 에어컨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보자 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숨 막히게 더웠다. 바로 위가 옥상인 탓이다. 안방의 매트리스는 내 몸만 닿으면 오븐처럼 뜨거워졌다. 어쩔 수 없이 비교적 낮에 햇빛을 덜 받는 옷방에 스몰 사이즈 대나무자리를 펴고 딱딱한 바닥에 몸을 누이며 아이스팩을 둘렀다. 그렇게 해도 밤새 잘 수 없었다. 꿈인지 생시인 지모를 밤이 지나면 녹초가 되어있는 아침을 맞이했다. 결국 나는 더위 앞에 굴복하고 이듬해 벽걸이 에어컨을 샀다. 전기세는 겨울 난방비보다 양호한 수준이었다. 진작 살걸, 후회해봤자 늦은 일이었다. 그렇게 혼자 많은 밤을 지냈다.
결혼을 하고 이사 온 아파트는 내가 살아본 집 중 제일 맘에 드는 집이다. 방이 두 개지만 동향이라 햇빛이 잘 들고, 베란다가 넓고, 그리 덥지 않다. 이 안락함에 젖어 퇴근을 하고는 식탁에서 밥을 먹고 소파에서 배를 두들기다가 침대밖에 없는 안방에 누워 핸드폰을 본다. 앉은뱅이 식탁이 있긴 하지만 TV 앞에서 밥 먹을 때만 쓴다. 그곳에 혼자 앉을 일은 거의 없다. 내 동거인이자 남편인 왕발이(발이 넓적하고 두툼하고 커서 왕발이다.)는 나보다 압도적으로 TV를 많이 보고, 나보다 늦게까지 거실에서 지내기 때문이다. 이 집은 모든 공간이 내 공간이지만 완벽한 나만의 공간은 없다.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이 집에서 나는 혼자 일리 없다.
오늘은 주말이지만 오랜만에 왕발이와 떨어져 지내는 주말이다. 나는 이 시간 거실에 TV를 끄고 비로소 혼자 이 앉은뱅이책상 앞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들고 앉았다. 나는 키보드의 경쾌한 자판 소리가 좋다. 밖에서는 앰뷸런스 소리가 멀어진다. 세상 어딘가에는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겠지만 지금 이 집 안엔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아이패드를 보는 나뿐이다. 결혼하고 느긋함과 안락함, 평온과 재미를 얻었다.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과 외로움, 그래서 뿌려왔던 생각들은 잃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 글을 쓰는 동안 녹아버린 커피 잔 속 얼음마저 내가 흔들어야 그제야 달그락 소리를 낸다. 그래서 좋다. 다음에 이사 갈 때에는 작은 방을 내게 내달라고 왕발이에게 말해야지. 원목 서랍과 작은 앉은뱅이책상, 그리고 요가매트를 깔게 해 달라고 해야지. 싫다고 할리 없지만 못해준다면 다음번에도 별로 열기 싫은 붙박이 문이 달린 집에 이사 가야지. 그 집에서도 가끔씩은 작은 방을 상상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