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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29. 2018

속된 표현은 글의 품위를 떨어뜨린다


   글은 단어들을 나열해서 쓴다. 글이라는 집을 짓기 위해서 단어라는 벽돌을 차곡차곡 쌓는다. 벽돌이 쌓여서 벽을 이루고 결국 집이 된다. 그런데 사용하는 벽돌이 한결같지 않을 수 있다. 잘 다듬어진 벽돌, 그래서 다른 벽돌과 조화를 잘 이루는 벽돌이 있는가 하면 모나고 거친 벽돌이 있다. 대부분의 벽돌이 반듯하고 잘 다듬어진 벽돌이라 하더라도 거칠고 튀는 벽돌이 섞이게 되면 집은 볼썽사납고 보기 흉하게 보인다. 글도 마찬가지다. 사용하는 단어 중에 거칠고 험한 말이 섞이면 글의 품위를 해친다.     


국정은 위기상황인데 황 권한대행의 마음이 대선이라는 콩밭에 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 싸다.     


   신문 사설에 ‘싸다’라는 말이 쓰였다. 속된 느낌이 물씬 난다. 이런 말은 뜻을 전달하는 효과는 또렷한 대신 속된 느낌 때문에 점잖은 느낌을 주지 못한다. 선명한 전달 효과를 포기하는 대신 다음과 같이 비슷한 뜻의, 은근한 표현을 쓰는 것이 낫다.     


‘종편에 놀아나는 방통위’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싸다’ 대신에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같은 온건하고 거부감 안 드는 말을 쓰더라도 얼마든지 전달하고자 하는 뜻이 표현된다. ‘싸다’라고 함으로써 글이 매우 가벼워졌다.     


中보복에 찍소리도 못하는 유일호 부총리     


   사설의 제목에 ‘찍소리도 못하는’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역시 논설문의 제목으로 적합하지 않은 표현이다. ‘아무 말도 못하는’이라고 하면 좀 약하고 심심해 보여서 ‘찍소리도 못하는’과 같은 강한 표현을 썼는지 모른다. 그러나 너무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홍 후보는 1일 밤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내답게 같이 가자”고 말했다. 정당을 무슨 이나 뜯어 나눠먹는 조폭 조직으로 아는 게 아닌가 싶다.     


   ‘’은 전형적인 속어다. 점잖은 자리에서는 쓸 말이 아니다. 그런데 신문의 사설에 등장했다. 친구들끼리의 사적인 모임에서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말이지만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읽는 공개적인 글에서는 피해야 한다. ‘삥이나 뜯어 나눠먹는’은 통째로 없어도 그만이다. 즉 ‘정당을 무슨 조폭 조직으로 아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해도 충분하다.     


또 검찰이 기업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5~10년씩 구형을 때리는데, 어느 기업인들 평창올림픽에 협력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구형을 때리는데’에 쓰인 ‘때리다’라는 말도 주로 입말에서 쓰지 글에서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다. ‘구형을 하는데’와 같은 중립적이고 온건한 표현을 쓰는 것이 거부감을 낳지 않는다.     


현재 전체 월급쟁이의 절반이 넘는 600만 명 이상이 가입해 있다.     


   논설문에 ‘월급쟁이’라는 말이 쓰였다. 월급쟁이는 월급을 받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월급 받고 사는 사람들이 좋아할 말이 아니다. ‘봉급생활자’ 같은 말을 쓰더라도 별로 뜻이 다르지 않다. 중립적이고 온건한 표현이 있다면 그런 말을 쓰는 게 낫다.     


민영화를 포함해 전면적 개혁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이 정도 성과주의마저 포기한다면 공공개혁은 도루묵이 될 게 분명하다.     


   ‘도루묵이 될 게 분명하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를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도루묵’을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도루묵과의 바닷물고기’라는 뜻풀이만 있을 뿐이다. 즉 ‘도루묵이 된다’고 할 때의 용법은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도 않다.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기 때문에 써서는 안 된다는 게 아니다. 국어사전에는 ‘허사가 된다’라는 뜻의 ‘도루묵’의 용법을 올려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런 말이 분명히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도루묵이 될 게 분명하다’는 널리 대중이 읽을 글에서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허사가 될 게 분명하다’라고 해도 충분히 뜻이 전달된다.


   거친 언어는 읽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강한 표현, 속된 표현은 당장 전달 효과는 클지 몰라도 글의 품위를 떨어뜨린다. 품격 있는 글을 쓰려면 온건하고 절제된 표현을 골라 쓰는 것이 좋다. 글에서 향기까지 느껴진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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