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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Oct 06. 2018

'시키다' 남용하지 않기


   ‘-하다’가 명사에 붙어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이듯이 ‘-시키다’도 역시 명사에 붙어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시키다’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사동’의 뜻을 더하고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라 뜻풀이되어 있고 예시어로 ‘교육시키다/복직시키다/오염시키다/이해시키다/입원시키다/진정시키다/집합시키다/항복시키다/화해시키다’가 올라 있다. 국어사전에 ‘하다’가 결합된 동사는 죄다 표제어로 올라 있는 반면 ‘시키다’가 결합된 동사는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것은 아쉽다. ‘시키다’가 붙은 말이 국어사전에 없다 보니 어떤 말에 접미사 ‘시키다’를 결합시켜서 써야 하는지, ‘시키다’가 결합되면 어떤 뜻을 지니는지 잘 알기 어렵다. 그 결과 ‘시키다’를 붙일 필요가 없는 말에까지 ‘시키다’를 붙여서 쓰는 사례가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접미사 ‘-시키다’는 사동의 뜻을 더한다. ‘복직시키다’는 ‘복직하게 하다’라는 뜻이고 ‘입원시키다’는 ‘입원하게 하다’라는 뜻이다. ‘복직하다’와 ‘복직시키다’는 뜻이 전혀 다르다. ‘입원하다’와 ‘입원시키다’도 마찬가지다. 접미사 ‘-시키다’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듦을 가리킬 때 써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스스로 하는 행동을 가리켜 ‘-시키다’라고 하는 예가 흔하게 발견된다.     


교사들이 자기들 말을 듣는 대로 빨아들이는 아이들을 상대로 자신의 정치적 생각을 주입시키려 든다면 세뇌와 같다.     


정부가 마음대로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시켜선 안 될 일이다.     


민주주의를 왜곡시키고 민의를 비트는 댓글 조작 행위를 뿌리 뽑지 못하면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     


더구나 국회에서 이런 전시회가 열렸다니 정치의 품격과 국격을 훼손시키는 막장 완결판이다.     


그러려면 어떤 쪽에서 보더라도 일절 시비를 걸 수 없도록 공정한 절차를 지켜 재판을 진행시켜야 한다.  

   

이틀 전인 6일 변창훈 검사의 투신자살 후 정치 보복 적폐 수사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그걸 희석시키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있다.    

 

자유한국당이 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시켰다.    

 

   이 예들에 나오는 ‘주입시키려, 금지시켜선, 왜곡시키고, 훼손시키는, 진행시켜야, 희석시키기, 출당시켰다’는 모두 ‘-시키다’가 아니라 ‘-하다’를 써야 하는 사례들이다. 남에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행동을 가리키면서 ‘-시키다’를 썼다. ‘-시키다’를 잘못 쓴 것이다. 


   이렇게 ‘-시키다’를 남발하는 것은 ‘-하다’만으로는 뭔가 뜻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즉 뜻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시키다’를 쓰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시키다’ 남발은 자칫 아무 말에나 다 ‘-시키다’를 넣는 풍조를 낳을 우려가 있다. 이미 그런 조짐은 보인다. 입말에서 ‘거짓말하지 마!’라고 할 것을 ‘거짓말시키지 마!’라고 하는 사례가 그런 예다. 남에게 시키는 것도 아니면서 ‘-시키다’를 써서 ‘-시키다’의 의미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거짓말시키지 마'는 입말에서 쓰이는 특별한, 예외적인 경우라 치더라도 위에 든 예들은 '-시키다'를 단지 '-하다'의 강조형으로 쓰는 것으로서 '-시키다'의 뜻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어 바른 용법이라 할 수 없다. '-시키다'는 '남'에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함을 가리키는 말인 만큼 스스로 하는 행동을 가리킬 때는 ‘-시키다’를 쓰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시키다’를 남용하는 경향이 낯선 단어를 낳기도 한다. ‘혼란시키다’라는 말은 없는 말이다. ‘혼란하다’는 형용사이다. 앞에서 예로 든 말들은 ‘-하다’가 붙은 말이 모두 동사이다.      


대부분 근거 없는 의혹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사고 당일의 대통령 행적과 관련해 연애설·굿판설·성형시술설 등 다양한 설이 등장해 사회를 혼란시킨 것은 청와대의 미숙한 대응 탓이 크다.     


   ‘혼란시킨’이라고 할 게 아니라 ‘혼란에 빠뜨린’이라고 하면 될 것을 ‘혼란시킨’이라는 새말을 만들어 썼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인데 함부로 새말을 만들어 쓸 일이 아니다.


   ‘-시키다’를 넣을 필요가 없이 그냥 ‘-하다’를 쓰면 되는데 ‘-시키다’를 남용한 예를 많이 보았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시키다’를 꼭 써야 하는 상황인데 ‘-하다’를 쓴 예들이 있다.     


이에 따라 이미 화학무기 사용 전력이 있는 시리아 정부군 등 반인륜적 집단에 화학무기를 확산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이번 대선을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소통하면서 묵은 상처를 치유하는 화합과 축제의 장으로 승화하는 일은 정치인의 의무다.   

  

무엇보다 일과 가정 양립이 가능한 근로 환경을 정착하는 것이 시급하다.     


   ‘확산하다’, ‘승화하다’, ‘정착하다’는 모두 자동사다. 각각 ‘~으로 확산하다’, ‘~으로 승화하다’, ‘~에 정착하다’와 같이 쓰이는 동사다. 이런 말들은 ‘~’이라는 목적어를 가질 수 없다. 그런데 ‘화학무기를 확산할’, ‘이번 대선을 승화하는’, ‘근로 환경을 정착하는’과 같이 썼다. 문법이 어그러졌다. 목적어가 있으니 ‘확산시킬’, ‘승화시키는’, ‘정착시키는’으로 써야 목적어와 호응한다. 접미사 ‘-시키다’를 쓰지 말아야 할 곳에 쓰는 것도 옳지 않지만 써야 할 곳에 쓰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혼란을 막기 위해서 국어사전에 접미사 ‘-시키다’가 결합하는 동사를 표제어로 올리고 바른 용례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시키다’가 붙는 동사가 사전에 오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하다’와 ‘-시키다’를 잘 가려서 쓸 때 문장의 뜻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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