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 말이 안 되는 문장이 비문(非文)이다. 비문은 ‘비문법적인 문장’을 줄인 말로서 문법을 지키지 않은 문장은 말이 안 된다. 비문의 반대말은 정문(正文)이다. “나는 학교에 간다.”는 정문이지만 “나는 영희를 결혼했다.”나 “철수가 영희에게 때렸다.”는 비문이다. 이런 명백한 비문을 한국사람이 쓰는 일은 없겠지만 한국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외국인이라면 곧잘 쓰기도 한다.
문제는 한국사람들도 비문인 줄 모르고 비문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한눈에 비문임이 보이지는 않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비문인 경우가 꽤 있다. 글을 쓸 때는 비문을 피해야 하고 정문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문은 문법적인 문장이므로 뜻이 선명하게 드러나지만 비문은 문법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뜻을 알기 어렵거나 뜻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다음 예를 보자.
문장은 주어와 서술어가 갖추어져야 한다. 주어만 있고 서술어가 없어도 비문법적이고 서술어는 있는데 주어가 없어도 비문법적이다. 위 문장에는 ‘놀라울’이라는 서술어가 쓰였는데 무엇이 놀라울 뿐이라는 것인지 보이지 않는다. 즉 ‘놀랍다’는 ‘소식이 놀랍다’, ‘능력이 놀랍다’ 등처럼 ‘무엇이 놀랍다’와 같이 쓰여야 하는데 ‘무엇이’가 없다. 동시에 ‘사실에’라는 말과 호응하는 말이 보이지 않는다. 즉, ‘사실에 놀랍다’는 서로 호응하지 않는다. ‘사실에 놀라다’가 서로 호응한다. 따라서 위 문장은 비문이다. 정문으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과 같이 바꾸면 정문이 되면서 혼란이 사라진다. 뜻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문법적인 문장이란 필요한 문장성분이 갖추어지고 문장성분 사이에 호응이 이루어진 문장이다. 이에 반해 비문은 필요한 문장성분이 없거나 문장성분 사이에 호응이 깨진 문장이다.
‘평가한다’라는 서술어가 있지만 누가 평가하는지가 없다. 주어가 보이지 않는다. 주어가 생략될 수 있지만 생략은 무엇이 생략되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때 할 수 있다. 이 문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주어가 없으니 의아함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고칠 필요가 있다.
즉, ‘평가한다’를 ‘평가 받는다’로 바꾸면 주어가 무엇이지 하는 궁금증이 사라지면서 문장이 쉽게 이해된다. 다음 예문을 보자.
‘부정한 청탁이나 뒷거래가 아닌’이 호응할 말이 없다. ‘부정한 청탁이나 뒷거래가 아닌 강압’은 얼핏 보면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부정한 청탁이나 뒷거래가 아닌 강압’은 말이 안 된다. 다음과 같이 고치면 문제가 해소된다.
‘아닌’을 ‘아니라’로 고치거나 ‘아닌’ 다음에 쉼표(,)를 쓰고 ‘어쩔 수 없이 낸 것이라는’이라고 하면 문법이 갖추어지면서 뜻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북한만이 아닌 한국’이라고 했는데 ‘북한만이 아닌’이 ‘한국’을 꾸밀 수는 없다. ‘북한만이 아니라’로 바꾸면 혼란이 해소된다.
다음 문장은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하지 않아 뜻이 모호해진 경우다.
주어는 ‘대전제는’인데 서술어는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실현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여서 서로 호응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여러 번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의아함을 지울 수 없다. 다음과 같이 고친다면 훨씬 이해하기 쉽다.
즉, ‘남북대화의 대전제는’을 ‘남북대화는’으로 바꾸거나 ‘남북대화의 대전제는’을 그대로 두고 ‘궁극적인 목표다’를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이다’로 바꾸면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 자연스럽다.
다음 예문에서도 주어와 서술어는 호응하지 않고 있다.
‘배경에는’과 ‘주효했기 때문이다’는 서로 호응하지 않는다. 호응이 어그러지면서 비문이 되고 말았다. 비문을 정문으로 고쳐야 한다.
‘북한이 대화에 나선 배경에는’을 ‘북한이 대화에 나선 것은’으로 바꾸면 ‘주효했기 때문이다’와 잘 호응한다. ‘북한이 배화에 나선 배경에는’을 살린다면 ‘대북 제제와 압박이 주효했기 때문이다’를 ‘대북 제제와 압박이 있었다’로 바꾸면 된다.
문장은 문법을 지켜야 바른 문장, 즉 정문이 된다. 문법을 어긴 비문은 뜻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 결과 비문은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정문이었다면 쉽게 뜻을 알 수 있었을 텐데 비문이어서 무슨 뜻일까 하고 골똘히 생각하게 만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뜻을 짐작할 수 없는 경우마저 있다. 어떤 글이든 독자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서 쓰는 만큼, 읽는 사람이 수월하게 뜻을 파악할 수 있도록 비문 아닌 정문을 써야 한다. 그것은 글 쓰는 사람의 기본적인 의무이다. 글을 쓴 뒤에는 비문이 섞여 있지는 않은지 늘 살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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