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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Oct 27. 2018

주어가 있어야 읽기 편하다

    문장은 주어와 서술어로 이루어진다. 어떤 문장이든 주어와 서술어가 있다. 긴 문장이든 짧은 문장이든 마찬가지다. 주어 없는 문장은 있을 수 없다. 때로 주어를 생략해도 좋은 경우가 있기는 하다. 주어가 앞 문장에 나와 있어서 생략하는 경우다. 굳이 되풀이하지 않아도 주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때는 주어를 생략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생략된 주어가 뭔지 알 수 없을 때는 주어가 없으면 안 된다. 주어가 없으면 문장의 뜻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 문장을 보자. 


중요한 것은 1948년 8월 15일을 기해 영토와 국민, 주권을 가진 민주공화국으로 태어났다는 점이다.


    '1948년 8월 15일을 기해 영토와 국민, 주권을 가진 민주공화국으로 태어났다'에는 서술어인 '태어났다'의 주어가 없다. 주어가 생략되었다. 물론 이렇게 써도 생략된 주어를 보충해서 이해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생략된 주어는 '이 나라가', '우리나라가' 정도로 보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주어를 생략하는 것은 글쓰기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생략된 주어가 무엇인지 몰라 독자가 혼란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 예문에서 주어를 밝히는 것이 좋다. '이 나라가', '우리나라가'와 같은 주어를 넣어 주든지, 아니면 '민주공화국으로 태어났다'가 아니라 '민주공화국 태어났다'라고 하는 것이 좋다.      


중요한 것은 1948년 8월 15일을 기해 이 나라가 영토와 국민, 주권을 가진 민주공화국으로 태어났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1948년 8월 15일을 기해 영토와 국민, 주권을 가진 민주공화국 태어났다는 점이다.          


    다음 문장에서도 주어가 없다.


그런 각오로 건강한 보수층을 절망과 허탈감에서 꺼내야만 궁극적으로 후보도 살리고 대한민국도 살릴 수 있는 길이다.


    '그런 각오로 건강한 보수층을 절망과 허탈감에서 꺼내야만 궁극적으로 후보도 살리고 대한민국도 살릴 수 있는 길이다.'에서 무엇이 '살릴 수 있는 길인지' 주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각오로 건강한 보수층을 절망과 허탈감에서 꺼내는 것'이 '길이다'의 주어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각오로 건강한 보수층을 절망과 허탈감에서 꺼내는 것이'라고 해야 '길이다'와 호응하면서 문장이 반듯해진다. '꺼내야만'을 굳이 쓰겠다면 '살릴 수 있는 길이다'가 아니라 '살릴 수 있다'라고 해야 한다. 무릇 문장성분들은 서로 호응이 돼야 한다.     


그런 각오로 건강한 보수층을 절망과 허탈감에서 꺼내는 것이 궁극적으로 후보도 살리고 대한민국도 살릴 수 있는 길이다.     


그런 각오로 건강한 보수층을 절망과 허탈감에서 꺼내야만 궁극적으로 후보도 살리고 대한민국도 살릴 수 있다.          


    다음 예도 비슷하다.


자사고 지정과 재지정 권한은 교육감에게 있지만 지정을 취소하려면 교육부 장관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지정을 취소하려면 교육부 장관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누구나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문법적으로도 반듯한 문장을 쓸 필요가 있다. '지정을 취소하려면'과 '가능하다'는 호응하지 않는다. '지정 취소는'이라야 '가능하다'와 호응한다. '지정을 취소하려면'을 살리고자 한다면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가 아니라 '동의가 있어야 한다'로 끝내야 한다. 문장성분은 서로 호응해야 문법적인 문장을 만든다.     


자사고 지정과 재지정 권한은 교육감에게 있지만 지정 취소는 교육부 장관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자사고 지정과 재지정 권한은 교육감에게 있지만 지정을 취소하려면 교육부 장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논설문에서 주어 없이 '~는 사실이다', '~는 평가다', '~는 소식이다', '~는 지적이다' 등과 같이 문장이 끝난 사례를 간혹 보게 된다. '~이다'는 '그 사람은 부자이다'처럼 '~ ~이다'와 같이 '~'에 해당하는 주어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주어 없는 문장을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보자.


탈북자 등 밖에서 김정은 체제 반대 운동을 벌이는 이들에 대한 경고 의미도 담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김정은이 어떤 심리 상태에 있는지는 더욱 분명해졌다. 공포 통치를 하고 있으나 정작 자신도 극단적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몰려 있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포 통치를 하고 있으나 정작 자신도 극단적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몰려 있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에서 '사실이다'의 주어가 없다. 무엇이 사실이라는 것인지가 보이지 않는다. 앞 문장에서 '김정은이 어떤 심리 상태에 있는지는 더욱 분명해졌다.'라고 했는데 이를 부연해서 설명할 생각이라면 '공포 통치를 하고 있으나 정작 자신도 극단적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몰려 있고 두려워하고 있다.'라고 하면 된다. 혹은 '공포 통치를 하고 있으나 정작 자신도 극단적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몰려 있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할 수도 있다.      


공포 통치를 하고 있으나 정작 자신도 극단적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몰려 있고 두려워하고 있다.     


공포 통치를 하고 있으나 정작 자신도 극단적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몰려 있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문장에서도 주어가 무엇인지 모호하다.


근로자를 위한다는 친노동 정책이 도리어 근로자에게 해가 되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이 문장에서 '역설적 상황을 만들고 있다'의 주어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근로자를 위한 친노동 정책이'가 주어인 듯싶지만 '근로자를 위한 친노동 정책이'는 명백히 '근로자에게 해가 되는'의 주어이다. '근로자를 위한 친노동 정책이'가 '근로자에게 해가 되는'의 주어이면서 동시에 '역설적 상황을 만들고 있다'의 주어이기도 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무리스러운 주장이다. 억지로 주어가 있다고 할 게 아니라 주어가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문장을 다듬는 것이 좋다. '역설적 상황을 만들고 있다'를 '역설적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또는 '역설적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라고 하면 '역설적 상황이'가 주어가 되어 문장이 반듯해진다.    

 

근로자를 위한다는 친노동 정책이 도리어 근로자에게 해가 되는 역설적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다음 문장에서는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하지 않는다.

   

유무죄의 갈림길은 이 부회장 측의 행위가 뇌물공여인지, 아니면 공갈·강요의 피해자인지에 달렸다.


    이 예에서 '공갈·강요의 피해자인지'는 '피해자'가 사람이기 때문에 주어가 '이 부회장'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있어야 할 '이 부회장이'가 없다. 따라서 주어인 '이 부회장이'를 보충해 넣든지, 아니면 '공갈·강요의 피해자인지'를 '이 부회장 측의 행위가'와 어울리도록 '공갈·강요의 결과인지' 또는 '공갈·강요에 따른 것인지'로 바꾸어야 한다.     


유무죄의 갈림길은 이 부회장 측의 행위가 뇌물공여인지, 아니면 이 부회장이 공갈·강요의 피해자인지에 달렸다.  


유무죄의 갈림길은 이 부회장 측의 행위가 뇌물공여인지, 아니면 공갈·강요의 결과인지에 달렸다.     


    주어는 문장을 구성하는 여러 성분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성분이다. 어떤 문장에서든 주어가 없을 수 없다. 따라서 주어가 또렷이 드러나게 글을 쓸 필요가 있다. 주어를 생략할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주어가 생략되더라도 생략된 주어가 무엇인지 명백할 때만 주어를 생략해야 한다. 그렇지 않음에도 주어를 보이지 않으면 문장은 그만 뜻이 흐릿해지고 만다. 독자가 불편을 느낌은 물론이다. 주어가 분명히 드러나는지 늘 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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