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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Nov 03. 2018

접속은 대등한 성분끼리 해야 한다

    글을 쓸 때 접속은 흔히 발생한다. 접속은 단순히 나열하는 경우도 있고 대조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앞의 말을 부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접속을 바르게 하지 못해 비문을 낳는 경우가 곧잘 나타난다. 접속은 대등한 성분끼리 해야 하는데 대등하지 않은 것끼리 접속함으로써 비문이 생겨난다. 접속 실패로 나타나는 비문은 대충 뜻이 통할지는 모르지만 반듯하고 정연한 문장이 아니다. 대등한 성분끼리 접속이 되었는지 잘 살펴야 한다.


김정은이 간부들을 잔인하게 처형한 이유는 그를 무시했다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충성심, 거만한 태도 등이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위 문장에서 '김정은이 간부들을 잔인하게 처형한 이유는'에 호응하는 서술어는 '그를 무시했다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충성심, 거만한 태도 등이었다'인데 '무시했다거나'의 '-거나'는 나열할 때 쓰이는 접속어미다. 그런데 '그를 무시했다거나'는 비록 주어가 생략됐을 뿐 목적어와 서술어가 있는 '문장'인 데 반해, 그 뒤에 나오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충성심, 거만한 태도'는 문장이 아니라 명사구다. 대등한 성분끼리 나열되지 않았다. 나열할 때는 대등한 성분이 나열되어야 한다. 따라서 '충성심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태도가 거만했다'와 같이 문장으로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김정은이 간부들을 잔인하게 처형한 이유는 그를 무시했다거나 충성심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태도가 거만했다는 등이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다음 예문도 마찬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게다가 외력에 의해 세월호가 좌초했다거나 잠수함 충돌설 등 각종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좌초했다거나'는 어미 '-거나'가 붙은 동사로서 그 다음에는 다른 동사가 와야 마땅하다. 그러나 '잠수함 충돌설'이라는 명사구가 나왔다. 따라서 문장이 바르게 되도록 다듬지 않으면 안 된다. '잠수함 충돌설'이 아니라 '잠수함과 충돌했다는'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외력에 의해 세월호가 좌초했다거나'를 '외력에 의한 세월호 좌초설이나'로 바꾸어야 한다.   


게다가 외력에 의해 세월호가 좌초했다거나 잠수함과 충돌했다 등 각종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게다가 외력에 의한 세월호 좌초설이나 잠수함 충돌설 등 각종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다음 문장에서는 접속을 하면서 필요한 성분을 생략하였는데 생략해서는 안 될 자리에서 생략하였다.


게다가 인양을 맡은 ‘상하이샐비지’는 한국의 정치 상황을 고려할 입장도, 손해를 자초할 이유도 없다.     


    '한국의 정치 상황을 고려할 입장도, 손해를 자초할 이유도 없다'는 '한국의 정치 상황을 고려할 입장도 없다'가 말이 된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 상황을 고려할 입장도 없다'는 말이 안 된다. '한국의 정치 상황을 고려할 입장도 아니다'가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따라서 '한국의 정치 상황을 고려할 입장도'라고 해서는 안 되고 '한국의 정치 상황을 고려할 입장도 아니고'처럼 '아니고'를 넣어 주어야 한다. 접속할 때에는 뒤에 나오는 말과 호응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게다가 인양을 맡은 ‘상하이샐비지’는 한국의 정치 상황을 고려할 입장도 아니고, 손해를 자초할 이유도 없다.          


    다음 예문에서는 명사구와 문장이 접속이 되었다. 글쓴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짐작은 충분히 가지만 문장은 비문이다. 명사구를 문장으로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서 문장과 문장이 접속되도록 해야 한다.


미국이 재협상을 요청해 관세율을 조정하면 향후 5년간 19조원의 수출 손실과 16만 개의 일자리가 날아간다는 보고서가 나와 있다.  

   

    '19조원의 수출 손실과 16만 개의 일자리가 날아간다는'은 '19조원의 수출 손실이 날아가고 16만 개의 일자리가 날아간다는'이 줄어든 꼴이다. 그러나 글쓴이가 '19조원의 수출 손실이 날아간다'을 의도했으리라고 보이지 않는다. 수출 손실이 날아간다는 말 자체가 어색하기 그지없다. 글쓴이의 의도는 '19조원의 수출 손실이 발생하고 16만 개의 일자리가 날아간다는'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의도대로 표현해야 마땅하다.     


미국이 재협상을 요청해 관세율을 조정하면 향후 5년간 19조원의 수출 손실이 발생하고 16만 개의 일자리가 날아간다는 보고서가 나와 있다.          


    다음 예문에서도 대등한 성분이 접속되지 않았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을 발사할 경우 대북 선제타격과 같은 군사행동이 현실화될 수 있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을 발사할 경우'라고 해도 무슨 뜻인지 모를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장이 제대로 잘 구성되었는지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핵실험이나 ICBM을 발사할 경우'는 '핵실험을 발사하거나 ICBM을 발사할 경우'가 줄어든 표현이다. 그러나 '핵실험을 발사하거나'가 말이 안 된다. 핵실험은 발사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할 뿐이다. 따라서 '핵실험을 하거나 ICBM을 발사할 경우'라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핵실험이나 ICBM 발사를  경우'라고 할 수도 있다. 접속은 대등한 성분끼리 해야 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ICBM을 발사할 경우 대북 선제타격과 같은 군사행동이 현실화될 수 있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 발사를 할 경우 대북 선제타격과 같은 군사행동이 현실화될 수 있다.          


    '~는 물론'은 흔히 쓰는 표현이다. 역시 접속의 일종이다. 그런데 다음 예문에서 '~는 물론'은 적절하게 쓰이지 않아 비문이 되고 말았다.


동아시아의 핵 확산은 핵비확산체제(NPT) 와해는 물론, 세상이 핵에 의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변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전체 문장의 주어는 '우려도'이고 서술어는 '있다'이다. '동아시아의 핵 확산은'은 '우려'를 꾸미는 문장의 주어인데 호응하는 서술어가 없다. '와해는'을 '와해를 불러옴'이나 '와해를 가져옴' 따위로 바꾸어야 '동아시아의 핵 확산은'과 호응한다. '세상이 핵에 의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변할'도 '세상이 핵에 의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변하게 할'이라고 해야 '동아시아의 핵 확산은'과 호응한다. 과도한 압축으로 비문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동아시아의 핵 확산은 핵비확산체제(NPT) 와해를 불러옴 물론, 세상이 핵에 의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변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가 아니라'도 접속의 한 형태다. 따라서 대등한 성분끼리 연결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다음 문장이 그런 예다.


이번 청문회는 분노를 배설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정 농단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문장의 의미를 모를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무슨 뜻인지 전달이 됐으니 문제 삼을 게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위 문장을 빨리 읽을 때는 문제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가겠지만 천천히 읽으면 말이 안 됨을 알 수 있다. '아니라'와 호응하는 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흠 잡을 데 없는 문장을 쓸 필요가 있다. 다음과 같이 고칠 때 문법적으로 온전해지면서 뜻이 명확해진다.     


이번 청문회는 분노를 배설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정 농단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자리로 마련됐다.

     

이번 청문회는 분노를 배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정 농단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글을 쓰다 보면 접속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같은 성분이 아닌 것끼리 접속함으로써 비문을 낳는 일을 피해야 한다. 명사구와 명사구, 동사구와 동사구, 문장과 문장이 접속되면 반듯한 문장이 되지만 명사구와 동사구, 명사구와 문장처럼 서로 다른 성분이 접속되면 문법성이 어그러지면서 읽기가 불편해진다. 비문이라도 독자가 뜻을 짐작할 수는 있지만 문법적으로 반듯한 정문을 쓸 때 뜻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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