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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Nov 10. 2018

동사마다 필요한 문장성분이 있다

  동사가 자동사와 타동사로 나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타동사는 목적어를 필요로 하고 자동사는 목적어가 필요 없는 동사로 아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동사는 단순히 자동사와 타동사로만 나뉘는 게 아니다. 훨씬 복잡하다. "바람이 분다"의 '분다'처럼 주어 말고는 다른 말이 필요 없는 동사도 있고, "나는 집에 도착했다"의 '도착했다'처럼 '~에'라는 말이 보어로 필요한 동사도 있다.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동사도 "철수가 영희를 사랑한다"의 '사랑한다'처럼 조사 '~를'이 붙는 목적어가 필요한 타동사가 있는가 하면 "권율은 이항복을 사위로 삼았다"의 '삼았다'처럼 '~을'이 붙는 목적어 말고도 '~로'가 붙는 보어가 있어야 하는 타동사도 있다. 


    그뿐이 아니다. "나는 그 사람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의 '생각한다'는 '그 사람이 훌륭하다고'와 같은 문장을 안는다. '제안하다' 같은 동사는 "우리는 그 회사에 새로운 계획을 제안하였다"처럼 '~을'과 같은 목적어를 가질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 회사에 새로운 사업을 같이 하자고 제안하였다"와 같이 문장을 안을 수도 있다. 이때 '하자고'에서 보듯 어미로 '-자고'가 쓰이는 것이 보통이다. 


    '짐작하다' 같은 동사는 매우 다양하게 쓰인다.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짐작했다", "그가 도착했으리라 짐작했다", "그가 도착했을 것으로 짐작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등에서 보듯이 다양한 말을 '짐작하다' 앞에 둘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우리는 그 사람이 범인이기를 짐작했다"나 "우리는 그 사람이 범인이었음을 짐작했다" 같은 문장은 전혀 말이 되지 않거나 몹시 어색하다. 


    이런 사례들을 놓고 볼 때 동사는 제각기 용법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동사마다 필요로 하는 문장성분이 다르다. 동사를 쓸 때는 그 동사에 맞는 문장성분을 써야 한다. 


대우조선해양이 그리스 선주들로부터 총 4억8000만 달러(약 5200억원) 규모의 선박 3척을 수주에 성공했다.      


    '선박 3척을 수주에 성공했다'는 문법이 어그러진 표현이다. '3척을'이 '성공했다'의 목적어가 될 수 없다. '3척을'을 살리려면 '3척을 수주하는 데'라고 고쳐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단지 ''만 빼서 '3척 수주에 성공했다'라고 할 수도 있다. 핵심적인 단어만 열거하면 문법에 어긋나도 대충 뜻이 통하니 괜찮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문법을 지켜야 반듯한 문장이 되고 독자가 편하게 읽는다.     


대우조선해양이 그리스 선주들로부터 총 4억8000만 달러(약 5200억원) 규모의 선박 3척 수주에 성공했다.    

  

대우조선해양이 그리스 선주들로부터 총 4억8000만 달러(약 5200억원) 규모의 선박 3척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다음 문장에서는 동사로 '지목하다'가 쓰였다.


구글의 한 연구원은 지난달 있은 랜섬웨어 기습의 배후가 북한이라고 지목했다.     


    '지목하다'는 보통 '~를 ~로 지목하다' 또는 '~로 ~를 지목하다'로 쓰인다. '아무개를 범인으로 지목하다'가 전형적인 예다. 그런데 위 예문에서는 '기습의 배후가 북한이라고 지목했다'라 하여 어색한 문장이 되었다. '기습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했다'라고 할 때 반듯한 문장이 된다. '지목하다'는 '~를'을 필요로 한다.   


구글의 한 연구원은 지난달 있은 랜섬웨어 기습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했다.              


    다음은 '강요하다'가 적절하지 않게 쓰인 예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인테리어를 본사에서 직접 맡아서 시공하겠다거나, 식자재 등을본사 것을 써야 한다고 강요한다    


    '강요하다'는 '~을 강요하다', '~기를 강요하다', '~라고 강요하다', '~도록 강요하다' 등으로 쓰이는 말이다. '식자재 등을 본사 것을 써야 한다고 강요하다'가 아주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훨씬 자연스러운 표현이 있다면 그걸 쓰는 게 좋다. '쓸 것을 강요한다' 또는 '쓰라고 강요한다'가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인테리어를 본사에서 직접 맡아서 시공하겠다거나, 식자재 등을본사 것을 쓸 것을 강요한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인테리어를 본사에서 직접 맡아서 시공하겠다거나, 식자재 등을본사 것을 쓰라고 강요한다.               


    다음은 동사로 '제안하다'를 사용한 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중소기업 취업자 임금이 대기업의 80% 수준이 되도록 정부가 한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청년수당 100만원 지급을 공약했다.     


    '제안하다'는 '~에게 ~을 제안하다' 또는 '~에게 ~고 제안하다'처럼 쓰이는 동사다. 그런데 위 예에서는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고'라고 했다. '지원해야 한다고'를 쓰려면 '제안했고'가 아니라 '주장했고', '말했고' 같은 말이 와야 한다. '제안했고'를 쓰려면 '지원해야 한다고' 대신에 '지원할 것을'이나 '지원하자고'라고 해야 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중소기업 취업자 임금이 대기업의 80% 수준이 되도록 정부가 한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청년수당 100만원 지급을 공약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중소기업 취업자 임금이 대기업의 80% 수준이 되도록 정부가 한시적으로 지원할 것을 제안했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청년수당 100만원 지급을 공약했다.               


    다음은 동사 '우려하다'를 쓴 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동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미 동맹이 굳건하고 두 대통령 간 관계가 강력하면 미국의 속마음과 고민을 한국 정부가 모를 리 없다. 지금 한국 정부는 겉돌고 있다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한국 정부는 겉돌고 있다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에서 '겉돌고 있다고'는 단정이고 '우려하지'는 단정과는 거리가 먼 뜻이어서 서로 잘 맞지 않는다. 따라서 '겉돌고 있다고'를 '우려'와 어울리는, 단정적이지 않은 표현으로 바꾸어야 한다. '겉돌고 있지 않은지' 또는 '겉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고 하면 '우려'와 어울린다. '겉돌고 있지 않나'라고 할 수도 있다. '겉돌고 있다고'를 그대로 두고자 한다면 '우려하지'를 다른 말로 바꾸어야 한다. '겉돌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나 '겉돌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지금 한국 정부는 겉돌고 있지 않은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한국 정부는 겉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확정된'을 동사로 쓴 예문이다.


한·미 훈련 입장이 애매하지만 연기한다고 확정된 것은 아니다.     


    '연기한다고 확정된 것은 아니다'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연기한다고 확정되었다'가 썩 자연스럽지 않은 만큼 '연기한다고 확정된 것은 아니다' 역시 자연스럽지 않다. '연기하기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또는 '연기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가 정상적이고 정확한 표현이다. 어색함을 피하는 방법은 또 있다. '연기한다고 확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바른 표현을 놓아 두고 굳이 어색한 표현을 쓸 이유가 없다.      


한·미 훈련 입장이 애매하지만 연기하기로 확정 것은 아니다.     


한·미 훈련 입장이 애매하지만 연기한다고 확정 것은 아니다.


    동사는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동사를 중심으로 문장이 구성되기 때문이다. 어떤 문장이든 주어는 필수적이다. 그 나머지는 동사가 필요로 하는 성분들이 모여 문장을 이룬다. 중요한 것은, 어떤 동사든 동사에 맞는 문장성분들이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동사마다 고유한 의미가 있고 그 의미에 맞게 필요한 문장성분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글을 쓸 때는 동사에 맞는 문장성분을 바르게 썼는지 잘 살펴야 한다. 자신이 없으면 국어사전을 참조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국어사전은 동사가 어떤 문장성분과 함께 쓰이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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