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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Dec 17. 2019

단어 바로 쓰기

타계하다 자처하다

바야흐로 미디어가 넘쳐나는 시대다.

예전에는 신문만이 거의 유일한 뉴스 전달 통로였고 그 신문이란 게 손에 꼽을 정도였다. 

종합일간지는 열 손가락 안에 들었고 경제신문 몇 개, 스포츠신문 몇 개가 전부였다.

합해봐야 스무 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대는 확 바뀌어 지금 매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아졌다.

인터넷신문은 왜 또 그리 많은지!

대중이 관심을 갖는 뉴스거리는 수백, 수천 건이 넘게 검색됨은 물론이고 수만 건을 넘기기도 한다.

매체가 많아진 만큼 기자의 수도 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매체가 풍성해진 대신 기사의 질은 떨어졌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오늘도 인터넷 뉴스에서 어이없는 단어 사용을 보고 혀를 찼다.



A씨는 같은 학교 동료 교사인 B씨가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무고한 혐의를 받았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17년 B씨와 합의해 성관계를 했다. 이 사실을 남편이 알게 되자 A씨는 이를 타계하기 위해 허위 고소를 하기로 결심했다. A씨는 같은 해 6월 변호사인 고소대리인을 선임해 B씨를 준강간죄, 강제추행죄 및 강간죄로 처벌해달라며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성폭행을 당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뒤 관할 교육청에도 성폭력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중앙일보)



'이를 타계하기 위해'라고 썼다.

'타계하다'는 죽는다는 뜻만 있을 뿐 목적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를 타계하기 위해'라고 썼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타개(打開)하기'를 머릿속에 두었을텐데 표기를 '타계하기'라고 했을 것이다.

'이를 모면하기 위해'라고 하거나 '이를 벗어나기 위해'라고 했다면 알기 쉬웠을 것이다.


또 이런 기사도 있었다.



'아차' 싶었던 걸까. 대통령 기자회견이 끝난 지 한 시간쯤 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인사 관련 추가 브리핑을 자처했다. 그리고 "국회의장으로서 여야를 운영해왔던 경험과 협치 능력을 높게 평가 했다"며 "강조점은 협치에 주로 있다"고 강조했다.

(TV조선)



'자처(自處)하다'는 '자기를 어떤 사람으로 여겨 그렇게 처신하다'라는 말이다. 

'도인을 자처하다', '선구자를 자처하다', '의인처럼 자처하다' 등과 같이 쓰인다. 

'브리핑'이 사람이 아닌 만큼 '브리핑을 자처하다'는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

'자청(自請)하다'라고 해야 하는데 '자처하다'라고 한 것이다.


그냥 '추가 브리핑을 하겠다고 나섰다'라고 하면 알기 쉬웠을 것을

좀 멋있어 보이는 말을 쓴다고 한 것이 잘못 쓰고 말았다.


문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어느 한 사람한테만 있는 일이 아니고 자꾸만 나타난다.

언어 질서가 어지러워지고 있다.


그러려니 하지 못하고 자꾸 눈에 거슬리니 이를 어쩌나.

기사 양이 좀 적어도 좋으니 정성을 기울여 썼으면 좋겠다. 

어디 일부러 그렇게 했을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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