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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24. 2022

횡성호수길 맛 보기

도시와 농촌의 극명한 차이

횡성에 횡성호수길이 있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근사한 산책로가 호수 둘레에 나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며칠 전 울진, 태백의 빽빽한 원시림을 보고 돌아오니 또 어디론가 가고 싶어졌고 그래서 떠올린 곳이 횡성호수길이었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횡성호수길에 어떻게 갈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강남고속터미널로 가서 원주행 고속버스를 탔다. 1시간 반 걸려 원주에 닿았고 고속터미널 바로 길 건너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다. 횡성행 시외버스 표를 끊었는데 원주-춘천 시외버스의 중간 기착지가 횡성이었다. 버스는 원주공항에 들른 뒤 횡성에 닿았고 나는 내렸다.


거기까진 순조로웠다. 횡성읍에서 횡성호로 가는 42번 버스는 하루 두 번뿐이었다. 오전에 한 번, 오후에는 3시 40분 차가 있었다. 3시 40분까지는 한 시간이 남았다. 기다리는 수밖에... 다행히 버스 정류장 부근에 꽤나 근사한 공원이 있었다. 만세공원이 그것이었는데 3.1 운동 당시 이곳에서 군민들은 독립만세를 외쳤고 이를 기려 공원이 만들어졌다.


공원은 조경이 아주 훌륭했고 자그만 호수에는 물이 강약을 조절해 가며 물이 힘차게 솟구쳐 올라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벤치에 기대 앉아 분수 구경도 하고 조경을 감상했다. 근처 건물에는 '횡성한우' 글씨가 크게 써져 있어 한우의 고장에 왔음을 알려주었다. 공원 안에는 구리로 된 소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고...


횡성댐 가는 42번 버스는 정확히 3시 40분 만세공원 앞을 떠났다. 15분쯤 달렸을까, 횡성댐 입 아래 구에서 내렸다. 공원이 조성돼 있었으나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외딴 곳에 던져진 느낌이다. 주차장에 차가 한두 대 서 있었을 뿐 대중교통으로 이곳에 온 이는 나뿐이다. 도무지 사람이 안 보인다. 이곳은 횡성호수길 1코스의 출발점이자 마지막 6코스의 도착점이기도 하다. 1코스의 입구로 향했다.


댐 아래 계곡물을 건너야 1코스가 시작되는데 비가 많이 왔는지 계곡의 돌계단은 물에 잠겨 있었다. 발을 적시지 않고는 건널 수 없었다. 적시는 정도가 아니라 종아리 위까지 차오르는 수위였다. 더구나 세차게 내려오는 물길이니 위험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수위가 높을 땐 건너지 마시오" 하는 안내판도 없었고 직원은 물론 없었다. 망설였다. 건널 것인가 말 것인가? 건널 만하다는 판단이 섰고 건너기 시작했다. 돌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건넜다. 물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신발, 양말은 몽땅 젖었음은 물론이고....


돌계단으로 계곡을 건너고 나니 1코스 안내판이 서 있었다. 숲속길이 시작됐다. 3km다.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됐다. 얼마나 사람이 안 다녔던지 거미줄이 끝없이 내 얼굴을 휘감았다. 동시에 초파리 같은 벌레들이 끝없이 내 얼굴에 달라붙었다. 거의 환장한 수준이었다. 손으로 연신 벌레를 물리치며 걸었다. 가장 신기했던 건 끝없이 나타나는 각양각색의 버섯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버섯을 보기는 처음 같다. 빨강 버섯이 있는가 하면 노랑 버섯, 희끄무레한 버섯... 가히 버섯 세상이었다.


능선에서 가장 높은 곳에 이르니 전망대가 지어져 있었다. 횡성호가 펼쳐져 있었다. 바로 아래로는 횡성댐이 내려다보였고... 울창한 숲이 호수 둘레에 빼곡했다. 횡성에 댐이 있는 줄은 몰랐다. 댐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잘 몰랐으리라. 멀리 어답산이 보였다.


1코스가 거의 끝나갈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옷을 꺼내 입었다. 이제부터 사진은 못 찍는다. 내리막을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널찍한 길이 나타났고 그곳이 1코스가 끝나고 2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2코스는 1코스보다 더 길다. 이미 저녁 6시고 비가 내리니 2코스를 가는 건 무리다. 오늘은 1코스만 보고 가는 거로 하고 마을로 빠지는 길로 들어섰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었지만 비로 길이 많이 파여 있어 걷기도 불편했다.


꽤 내려왔을 때 밭에 앉아 일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1코스를 걷기 시작한 이래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반가워 인사하니 그분 역시 아주 반색을 했다. 산에서 사람이 내려오는 게 신기했나 보다. 어디서 오느냐 묻기에 수림공원에서 오는 길이라 하니 놀라면서 혼자냐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혼자 이 산길을 오느냐며 감탄하는 기색이었다. 버스 타러 가고 있다 하니 친절하게 길을 일러 주었다. 깊은 산속 넓은 밭에서 비가 부슬부슬 오는 가운데 일하는 농부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그들 덕에 먹거리를 쉽게 구할 수 있으니...


횡성군 갑천면 대관대리 드넓은 벌판엔 한창 벼가 자라고 있었다. 가을이면 수확을 하리라. 평온한 농촌 정경이었다. 빤히 보이는 대로가 왜 그리 먼지 몰랐다. 공기가 깨끗해서일지도 몰랐다. 대관대리 버스 정류장에 앉아 숱하게 적힌 버스 노선을 살펴보았다. 횡성읍으로 가는 버스는 40, 46, 49가 남아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아직 오려면 적어도 1시간 이상 남았다. 무료하게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순 없기에 걷기 시작했다. 횡성읍을 향해...


1시간쯤 걸었을까, 마옥리에 이르렀다. 거기 버스정류장에서 멈춰 버스를 기다렸는데 욕심을 부린 게 화근이었다. 마옥리를 지나 얼마 가지 않아 버스가 한 대 지나갔다. 40번 버스였다. 그걸 탔어야 하는데 그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마옥리를 지나 다음 정류장인 머지고개에 이르렀을 때 해는 져서 캄캄했고 어둠 속에서 걷는 건 위험했다. 더구나 비까지 퍼붓기 시작했다. 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보도가 따로 없는 좁은 2차선 도로에 캄캄한 길을 걷는 건 무모한 짓... 머지고개 너머 버스 서는 데서 버스를 기다렸다. 40번은 지났으니 46번과 49번은 지나가리라 기대하면서...


그러나 무려 한 시간을 기다렸으나 버스는 오지 않았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오기 시작했다. 비옷을 입었고  큰 나무 밑이었으나 빗물이 스며들었다. 저 멀리 고개 너머로 차량의 전조등 불빛이 비칠 때면 혹시 버스가 아닌가 싶어 뚫어져라 봤으나 죄다 승용차였지 버스는 아니었다. 그러다 빈 택시를 발견했다. 아, 가끔 택시도 지나는구나. 머지고개 너머는 숲이 우거진 산 밑이었고 비가 퍼붓는 가로등 없는 캄캄한 도로에 맹렬히 달려오는 택시는 간절하게 손 흔드는 나를 외면하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그렇게 두 대의 택시를 보내고 세 번째 택시가 비로소 끼익 하고 차를 맘추는 것이었다.


택시에 올라타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니 지금이 몇 신데 버스가 어디 있냐며 택시 기사는 딱하다는 표정이었다. 이미 끊어진 지 오래라 했다. 다행히 택시를 잡을 수 있어 오지를 탈출할 수 있었다. 택시는 곧 횡성읍에 닿았고 읍 외곽에 있는 횡성역에 이를 수 있었다. 서울 가는 기차는 밤 11시께까지 있었다. 10시 11분 청량리행 KTX 표를 사고 기차에 올라 무사히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치밀한 계획 없이 갑자기 찾아간 횡성호수길... 조금 비경을 맛 보고 돌아왔다. 1코스는 보고 왔으니 나머지 코스는 다음 기회에 가면 된다. 새삼 느낀 건 이 나라의 대중교통이 대도시에선 엄청 편리하지만 시골로 가는 순간 거의 붕괴됐다는 것이다. 이제 시골에 사는 사람들도 다 자기 차로 움직인다. 아주 노인이나 버스를 타지... 그 몇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버스가 자주 다닐 이유가 없다. 하루 한두 번이면 족한 것이다. 내 차 없이는 어딜 기기 두려운 세상이 됐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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