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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ug 17. 2022

중의적 문장

중의성은 피하는 게 좋다

어제 수원에 가서 국어책임관들에게 강의할 때의 일입니다. 법률 조문에 문제가 적지 않음을 이야기하면서 형사소송법 제212조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도 문장의 뜻이 분명치 않음을 말했습니다.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는 아주 짧은 문장입니다. 그런데도 뜻이 분명치 않다니요? 뜻이 하나가 아니고 여럿인 문장을 중의적인(ambiguous) 문장이라고 하는데 이 문장은 중의적입니다.

누구든지’가 문제인데요. 한 가지 뜻은 모든 현행범인은 예외 없이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 뜻은 현행범인에 대해서는 경찰관이든 경찰관이 아니든 누구라도 체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뜻은 전혀 다릅니다.

제가 어제 강의에서 수강생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두 가지 뜻 중에서 여러분은 어떤 뜻이라고 생각하냐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한 분이 손을 번쪽 들더니 첫 번째 뜻으로 이해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저도 처음에 이 문장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은 첫 번째 뜻이 아니고 두 번째 뜻입니다.” 하고 말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12조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는 경찰관은 물론이고 경찰관이 아니라도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는 조항입니다. 그러나 저나 그리고 어제 강의를 들은 국어책임관이나 그렇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달리 받아들였습니다.

중의적인 문장은 이처럼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사람들이 해석한다면 문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만일 이 문장을 “누구든지 현행범인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라고 했다면 얼마나 뜻이 명확합니까. 왜 중의성 없는 깔끔한 문장으로 쓸 수 있는데 모호하게 중의적인 문장을 쓸까요? 답답한 노릇입니다.

물론 그 다음 조항인 제213조 제1항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리 아닌 자가 현행범인을 체포한 때에는 즉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리에게 인도하여야 한다.”가 있으니 제212조의 중의성은 해소됩니다. 그러나 제213조 제1항을 모른 채 제212조만 읽는다면 뜻이 모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법률 조문이 아예 문법적으로 틀리거나 제212조처럼 ‘중의적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법률 조문을 읽을 때 장애가 됨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국민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법률 조문을 보고 싶습니다. 국민은 그런 법률을 가질 권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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