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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Oct 10. 2022

말에 대해 좀 너그러웠으면

어제 밤 늦게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매우 놀랐다. 눈을 의심할 만큼... 프로는 연합뉴스TV의 '맛있는 우리말'이었다. 그 안에 '사달이 났다'라야지 '사단이 났다'는 틀린 말이라는 거는 전에도 들은 적이 있어서 그러려니 했다. 비록 나는 '사단이 났다'고 하지 '사달이 났다'가 어색하기 그지없지만...


그런데 그 다음 장면에서 기절초풍할 내용이 흘러나왔다. '품절', '택배', '과소비'가 일본어니까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품절', '택배', '과소비' 같은 한자어가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라는 건 얼핏 들은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꼭 쓰지 말아야 할 말일까.


만일 '품절', '택배', '과소비'가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니까 쓰지 말아야 한다면 '자유', '철학', '종교', '신경', '결혼', '물질', '방송' 같은 말들도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니까 쓰지 말아야 할까? 만일 그런 식이라면 우리가 쓸 수 있는 말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어서 더 놀라운 내용이 나왔다. '품절'은 '물건 없음'으로, '택배'는 '집 배달'로, '과소비'는 '지나친 씀씀이'로 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품절은 명사로만 쓰이나? 아니다. '품절되다'라는 동사로도 쓰인다. 그래서 '품절됐더라고요'는 '물건 없음 됐더라고요'라고 쓰란다. '과소비하게 돼서'는 '지나친 씀씀이 하게 돼서'라 하고...


포복절도를 넘어 이게 과연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권할 수 있는 내용인가 싶어 눈을 의심했다. '물건 없음'은 '품절'의 뜻풀이는 될 수 있을지언정 '품절'을 대신할 말은 못 된다. 이 세상 누가 '품절됐더라고요' 대신 '물건 없음 됐더라고요'라 말할까. 개그라면 몰라도...


연합뉴스TV의 '맛있는 우리말'은 개그 프로가 아니다. 진지한 교양 프로다. 그런데 내용은 개그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이래서는 안 된다. 品切, 宅配, 過消費가 일본에서 만든 말이라 할지라도 국어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쓰이면 국어 단어다. 그런 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자유', '철학', '종교', '신경', '결혼', '물질', '방송' 같은 말이 다 그런 것들이다.


말에 대해 결벽증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너그러운 태도가 필요하다. 더구나 대안으로 제안된 말이 우스꽝스럽고 어이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왜 영어, 중국어에서 온 말은 괜찮고 일본어에서 온 말은 써서는 안 되나. 언어는 용광로와 같다. 온갖 말들이 다 들어와 섞인다. 어원을 따져서 일본어에서 온 말이니 쓰지 말자는 것은 경직된 태도다. 다 우리말에서 필요하니 쓰는 것이다. 더구나 '품절', '택배', '과소비'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기까지 하다.


방송이 국수주의를 부추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송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좀 더 신중하게 방송 내용을 선정했으면 좋겠다. '물건 없음 됐더라고요', '지나친 씀씀이 하게 돼서'에 놀란 가슴이 좀체 진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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