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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Nov 14. 2022

속상할 뻔했다

신을 발에 맞추어야지 발을 신에 맞춰서야 

법에 비문이 많으니 정부와 국회는 어서 민법을 개정하라는 내용의 글을 ㅈ일보에 기고했고 글이 오늘 신문에 실렸다. 비문은 말이 안 되는 문장인데 법률에 말이 안 되는 문장이 수두룩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고문이 실리기 전 신문사에서 필자인 내게 이른바 대장이라는 것을 보내왔다. 이렇게 실릴 거니까 확인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읽어 보니 내가 신문사에 보낸 글과 몇 가지 차이가 있었다. '국어문법에 맞다'를 '국어문법에 맞는다'로, '틀린 표현', '틀린 문장'을 '틀리는 표현', '틀리는 문장'으로 바꾸었다. 


그밖에 '한 치의 오류도 없어야 한다'를 '오류가 한 치도 없어야 한다'로 바꾸고, '범죄자에게만 적용되는 형법, 상인에게만 적용되는 상법'을 '범죄자에게만 적용하는 형법, 상인에게만 적용하는 형법'으로 바꾸었다. 


'맞다'를 '맞는다'로 바꾸고 '틀린'을 '틀리는'으로 바꾼 것은 국어사전에 '맞다', '틀리다'의 품사가 동사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바꾸었을 텐데 이는 국어사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크다' 같은 말을 보자. '키가 참 크다'고 할 때는 형용사지만 '무럭무럭 키가 큰다'고 할 때는 동사다. '크다'는 형용사이기만 한 게 아니고 동사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다. '맞다', '틀리다'는 동사이기만 한 게 아니고 형용사이기도 하다. '틀린 답'이라고 우리가 말하지 않는가! 그건 바로 그 '틀린'이 형용사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국어사전에 '틀리다'가 동사라고만 되어 있으니 신문사의 담당 부서에서 '틀린 표현', '틀린 문장'을 '틀리는 표현', '틀리는 문장'으로 바꾸어 버렸다.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었다. '틀리는 표현', '틀리는 문장'은 억지 그 자체다. 누가 그렇게 말하나. 사전이 무오류라고 믿는 데서 비롯된 웃지 못할 일이었다. 다투기가 싫어서 '틀리는'은 곤란하니 '잘못된'이라고 바꾸라고 했고 신문사에서 이를 받아들여 신문에 '잘못된'으로 나왔다. '틀린'을 관철시키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잘못된' 정도에서 타협을 보았다. 


'한 치 오류도 없어야 한다'를 신문사에서 '오류가 한 치도 없어야 한다'로 바꾸었는데 그냥 두긴 했지만 참 못마땅하다. 조사 '의'를 어떻게든 쓰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 '의'는 일본어투라고 그러는 모양이다. 일본어투거나 아니거나 '한 치의 오류도 없어야 한다'가 굳어져서 이미 입에 배었고 '오류가 한 치도 없어야 한다'는 억지스럽기만 하다. 신을 내 발에 맞추는 게 아니고 내 발을 신에 맞추는 격이다.


'적용되는'을 '적용하는'으로 바꾼 건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적용되다'라는 말이 국어 단어에 없나?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적용되다'를 쓰면 안 되는가. 피동은 피하는 게 좋다는 그릇된 신념이 이런 희한한 일을 낳았다. 교열은 문장을 개선해야지 개악하면 안 된다. 기고를 실어준 건 고맙지만 글을 멋대로 고치는 건 횡포에 가깝다. 막판에 '틀리는'을 '잘못된'으로 바꾸긴 했지만 만일 '틀리는'으로 나왔더라면 여간 속상하지 않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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