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익 없는 민법 개정
어제 김웅 의원실을 방문하고 지난 목요일 국회 본회의에서의 민법 일부개정법률안 표결 때 왜 김웅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실익이 없기' 때문에 반대했다는 것이었고 만 나이를 사용하면 태아의 권리가 보호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덧붙였습니다. 한국식의 집에서 세는 나이를 쓸 때 비로소 태아도 인간으로서 인정받는다는 생각인데 이번 민법 개정에 김웅 의원의 이런 뜻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집에서 세는 나이를 공문서와 같은 공적 영역에서도 쓰자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민법 개정이 '실익이 없다'는 데 대해서는 김웅 의원과 생각이 꼭같습니다. 현행 민법도 만 나이를 쓰도록 하고 있고 이번에 통과된 개정 민법도 만 나이를 쓰도록 하고 있으니 개정의 실익은 전혀 없습니다. 실익 없는 법률 개정을 왜 합니까? 김웅 의원은 그런 점에서 이번 민법 개정에 반대표를 던진 것이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지난 12월 8일 민법 일부개정법률안 표결 때 245명이 찬성, 8명이 기권, 1명이 반대했습니다. 찬성표를 던진 245명의 국회의원은 무슨 생각에서 민법 개정안에 대해 찬성했을까요? 그것이 궁금합니다. 이번 민법 개정은 내용이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는 개정이었습니다. 참 희한한 법률 개정도 다 있습니다. 입법 과정이 이렇게 허술한 줄은 참으로 몰랐습니다. 국민을 대표해서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민법 개정이 추진된 동기는 '집에서 세는 나이'는 한국에서만 있는 일이고 국제적인 기준에는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세는 나이'는 '집에서'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그야말로 개인들끼리 사적으로 쓰는 나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뱃속에 든 태아도 생명이라는 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기도 합니다. 이런 뿌리 깊은 습관을 법률 개정을 통해서 바꾸려고 한 발상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번지수를 단단히 잘못 짚은 것이고 법률 만능주의에서 비롯된 그릇된 생각이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민법을 개정했으니 '집에서 세는 나이'를 이제는 쓰지 않겠거니 하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기존 민법 자체가 이미 '만 나이'를 쓰도록 하고 있거니와 '집에서 세는 나이'를 써온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과 강력한 관습을 바꾸기 위해서는 법률 개정이 아닌 전혀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합니다. 아니, 집에서 세는 나이를 없애는 게 도무지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번 민법 개정은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