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는 무섭다
신문 제목에 큼지막하게 '전국 등윳값'이란 말이 올랐다.
그래서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등윳값'이 없었다. "찾으시는 단어가 없나요? 우리말샘에서 다시 한번 검색해 보세요."라고 나와 있어 우리말샘에서 찾아보았으나 역시 없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신문 제목에는 '등윳값'이라는 말이 쓰였을까. 짚이는 데가 있다. 우리말샘에 '등윳값'은 없어도 '경윳값', '석윳값', '휘발윳값' 같은 말이 올라 있다. 그러니 '등윳값'이 비록 사전에 없지만 유추해서 '등윳값'이라고 했을 것이다. 학습효과가 나타났다.
사전에 오른 '경윳값', '석윳값', '휘발윳값'에 학습되어 '등윳값'이라 썼으니 아마도 중유, 윤활유 등도 '중윳값', '윤활윳값'이라 쓰지 않을까 짐작된다.
사전에는 실로 수많은 '00값'이 표제어로 올라 있는데 '값' 앞의 말이 모음으로 끝났으면 예외 없이 사이시옷을 넣고 있다. 일부만 보이면 다음과 같다.
가히 무차별적으로 사이시옷을 붙였다. 그런데 '경윳값', '석윳값', '휘발윳값' 등에서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다. 이때 '값'은 '가격'이란 뜻으로서 이른바 '경윳값'은 '경유 가격'이란 뜻이다. '경유 가격'은 국어사전에 없는데 '경윳값'은 국어사전에 오른 이유가 뭔가. 왜 국어사전에 '사탕값', '음식값', '그릇값', '화장품값', '소금값', '설탕값'은 없는데 '경윳값', '석윳값', '휘발윳값'은 올라 있나?
국어사전은 '단어'만 표제어로 수록해야 하는데 단어보다 큰 단위의 말이 상당히 많이 올라 있다. 단어가 아닌 구를 왜 국어사전에 올리는가? '석윳값', '경윳값', '휘발윳값' 따위는 단어가 아니므로 국어사전에 올라가선 안 될 말이다. 이런 잘못 올라간 말에 학습되어 사전에도 없는데 '등윳값'이란 말이 신문에 표제어로 쓰인다. 세뇌란 이리도 무섭다. 사전을 바로잡는 일이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