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밭

동포

by 김세중

일요일 낮에 갑자기 해가 쨍 하고 떴다. 오전까지 찌뿌둥하던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날씨가 여간 화창하지 않았다.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어 근처 산으로 향했다. 가방에 물병 하나 넣어...


관악산 줄기 끄트머리인 등산로 입구부터 기나긴 계단이 시작된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상한 일이 있었다. 누군가 뒤에서 나를 바짝 붙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간 같이 가는 건 있을 수 있다. 그러다가 결국은 누군가 앞서면서 거리가 멀어지게 돼 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약 2~3m 간격을 두고 뒤에 오는 사람은 나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꾸준히 내 속도대로 걸었다. 30분쯤 지났을까. 신랑각시바위 부근에 이르렀을 때까지도 그 사람은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등산로를 벗어나 신랑각시바위 전망대가 있는 계단으로 내려섰다. 전망을 즐기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그 사람을 떼어놓으려는 뜻도 있었다. 설마 그렇게 하면 떨어지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3~4분간 전망대에 머물며 사진과 동영상도 찍고 다시 계단 위로 올라서니 놀랍게도 뒤따라오던 사람이 부근에 서 있는 게 아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신랑각시바위 부근


별일 다 보겠다 싶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왜 날 따라오느냐고 묻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건 그의 자유니까. 그는 계속 뒤따라오고 있었다. 등산로를 몰라서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가는 등산객이 좀 많은가. 그들에게 물으면 될 일이다. 드디어 교차로에 이르렀다. 계속 가면 호암산, 오른쪽으로 가면 삼성산, 왼쪽으로 내려가면 호압사인 지점이다. 거기서 멈춰서 몇 분간을 쉬었다. 그를 떼어 놓으려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는 얼마간 떨어진 곳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교차로의 나머지 세 방향 중에서 제일 험한 직진 길을 따라 호암산 정상으로 향했다. 제법 험했다. 드디어 그 사람이 내게 말을 건네왔다. "정상이 어딥니까?"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호암산 정상은 5분만 더 가면 나오고 삼성산 정상은 한 시간 이상 걸어야 하며 관악산 정상은 족히 세 시간은 가야 할 거라고. 그의 억양은 그가 조선족 동포임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문답이 시작되니 띄엄띄엄 대화가 이어졌다. 곧 헬기장을 지나 호암산 정상 국기봉이 나왔고 그는 자기 폰을 내게 건네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찍어주었다. 그리고 근처의 전망대로 가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서는 서울 시내가 다 내려다보인다. 멀리 북한산, 도봉산이 보이고 그 사이에 남산도 조그마하다. 한강이 살짝 보이고 잠실 롯데빌딩이 우뚝 서 있으며 여의도 건물군도 보인다. 서울을 어디어디 가 보았냐고 하니 웬만한 덴 다 가봤다며 서울 산 지 20년이 됐다고 했다.


하산하는 길도 그는 나를 뒤따라 왔다. 호압사에 이르렀을 때 그가 나더러 벤치에 잠시 쉬고 있으라며 절 앞 커피 파는 곳으로 갔는데 사람이 없어서 되돌아왔다. 내게 커피를 사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올라올 때는 능선길을 걸었지만 되돌아가는 길은 둘레길을 따라 걸었다. 왜 이렇게 수퍼가 안 보이느냐고도 했다. 드디어 등산을 시작했던 지점으로 돌아왔다. 약 3시간 반만이었다. 그는 막걸리 한잔 하자며 나를 이끌었다. 호의를 뿌리칠 수 없어 식당으로 들어가 마주앉았다.


생선구이를 주문하고 막걸리를 마시며 대화를 시작했다. 2000년에 한국에 왔으니 23년째다. 누나, 두 남동생, 여동생이 한국에 산다 했다. 온 가족이 한국에 사는 게다. 흑룡강성 우수리강 국경 부근이 고향이라는데 말이다. 같이 살던 노모는 몇 해 전 심심해서 못 살겠다며 친구들이 있는 중국으로 돌아갔다 하고...


그의 개인사, 가족사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한국 와서 15년 가량은 때밀이를 했고 몇 해 전부터는 간병인을 하고 있다고 했다. 때밀이로 돈을 많이 벌어 웨이하이(威海)에 집을 사두어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자주 웨이하이에 다녔다는 것이었다. 군산에서 웨이하이 가는 배 편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 인천, 평택에서도 있었지만.


중국어를 잘하는지 한국어를 잘하는지 물으니 중국어는 한국어만큼 잘하지 못한다 했다. 그러나 마흔 전후인 두 아들은 중국에서 대학을 나와서 중국어를 더 잘한다고 했다. 두 아들 중 큰아들만 결혼했는데 역시 동포인 며느리 사이에 여섯 살 난 딸이 있다고 했다. 그의 손녀였다. 손녀는 중국어를 잘 하는지 물으니 전혀 못한다는 게 아닌가.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랐으니 그런 모양이다.


그에게 물었다. 한국 영주권이 있느냐고. 없다고 했다. 중국 국적이라는 것이다. 아들 내외도 마찬가지라 했다. 이때 의문이 생겼다. 손녀는 그럼? 지금 유치원에 다닌다는데 초등학교에는 입학할까? 그 아이에게 취학통지서가 나올까. 한국에서 태어나면 한국 국적이 주어지나? 내 지식이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이제 곧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인 그의 손녀가 한국에서 의무교육을 받게 되는지 어떤지 궁금했지만 그도 잘 알지 못하는 듯했다. 이런 아이가 어디 그의 손녀뿐이겠는가. 수없이 많을 것이다.


등산을 하면서 참 특이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왜 나를 따라왔나. 늘 등산을 다닐 때면 어떤 한 사람을 지목하고 그를 따라가는 걸까. 그래서 결국 얘기를 섞고 친하게 되는 걸까. 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그와 서로의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그가 다시 전화를 해올지는 알 수 없다.


주변 한국사람 중에는 이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의 독특한 행동은 그의 개인 특징일까. 조선족 동포의 성향일까. 아니면 중국 한족에게서 보이는 특징일까. 아직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체면을 돌보지 않는 그런 성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세상은 넓고 참으로 사람은 다양한 듯 보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챗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