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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Mar 02. 2023

돈덕전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거듭나기를


몇 달 전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다가 전에 못 보던 화려한 건물이 들어선 걸 보고 무척 놀랐다. 벽에 붙은 설명을 보니 구한말에 있었던 돈덕전(惇德殿) 건물을 복원하는 것이라 씌어 있었다. 나는 1990년대에 약 6년간 덕수궁 안 석조전에서 근무한 바가 있었기에 그때는 없었던 근사한 건물이 들어선 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조선일보에서 '왜 200억 들여 '대한제국 영빈관'을 다시 짓나'라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 공감한다. 이미 거의 다 지어졌기에 허물 수야 없겠지만 왜 이미 100년 전에 사라진 건물을 새로 지어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시 건물의 설계도라도 완벽하게 남아 있었다면 몰라 그렇지도 않단다. 그저 평면도만 남아 있고 사진이 있을 뿐이다. 그걸 가지고 '복원'이라고 하기에는 뭣하니 '복원' 대신에 '재건'이라는 용어를 쓴다지만 그게 그거다.


돈덕전은 대한제국 시기이던 1901년에 착공돼 1903년에 완공됐단다. 고종황제가 외국 사신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풀던 장소로 지은 건물이었다. 영빈관으로도 쓰였단다. 이 건물에서 1907년 8월 27일 순종황제 즉위식이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1910년 8월 국권을 잃은 후 이 건물은 급격히 쓸모없어져 갔고 1920년대 어느 땐가 완전히 철거된 후로는 어린이 유원지가 되고 말았다는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 필자가 부근 석조전에서 근무할 때 지금 돈덕전이 재건되고 있는 곳은 빈땅이었다.


200억원이나 투입되어 완공을 눈앞에 둔 돈덕전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까. 개인적인 소견은 이왕 지어진 이 건물은 대한제국의 역사를 기록하는 박물관으로 쓰였으면 한다. 13년 동안 존재했던 대한제국은 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황제국으로 탄생했지만 그런 외침과는 사뭇 다르게 시시각각 쇠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미국과 카쓰라태프트조약을 맺고 대한제국 병합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1905년 을미늑약을 맺음으로써 외교권을 뺏고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었다. 1907년 일제는 대한제국의 군대도 해산했고 헤이그밀사 사건을 핑계 삼아 고종황제를 강제퇴위시켰다. 그리고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탄조약을 선포하니 나라는 사라지고 말았다.


비록 13년이란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라가 무너져 가고 있었다. 돈덕전의 화려한 외관과 달리 대한제국은 이미 썩을 대로 썩었다. 이 치욕의 역사를 100년만에 다시 세워진 돈덕전에 샅샅 밝히고 국민에게 알렸으면 한다. 다시는 나라를 잃는 일이 없도록 후세에 귀중한 교훈을 일깨워 주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사라지기 전의 돈덕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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