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성지와 청년김대건길
용인에서 42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양지 못 미쳐서 남곡리에서 내리면 은이성지 가는 길이 시작된다. 초입엔 공장들이 어수선하게 들어서 있고 길 표시가 그리 잘 눈에 띄지 않는다. 표지판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걷다 보니 은이성지에 이르렀다. 한글로는 은이성지인데 한자로는 隱里聖址다. '은리'가 아닌 이유가 있는 듯하다. 넓은 대지에 먼저 사제관이 있고 잔디밭 뒤로 성당과 기념관이 있다. 성당에는 종서로 天主堂이라 적혀 있었다. 김대건기념관 안으로 들어서니 자그마한 박물관이었다. 김대건 신부의 생애가 어떠했는지 잘 전시돼 있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기념관 안으로 밀어닥쳤다. 순례객들이었다. 단체 손님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신부 한 분이 은이성지의 유래, 역사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좋은 기회다 싶어 끝까지 순례객들 속에 끼어서 강의를 들었다.
김대건 신부는 조상대에서부터 이미 천주교 집안이었다. 1821년에 태어난 김대건 신부는 1836년 세례를 받고 신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러 마카오로 가게 되는데 걸어서 압록강 건너 중국에 이른 뒤 대륙을 종단해서 1837년 여름 마카오에 도착했단다. 반 년 이상 걸었다는 얘기다.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1845년 상하이에서 한국사람으로서는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품을 받은 장소가 상하이 김가항(金家巷)성당이었단다. 그러나 조선에 돌아온 김대건 신부의 사제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인 1846년 9월 16일 순교하였다. 김대건 신부의 묘는 미리내성지에 있는데 은이성지에서 10km도 채 안 떨어져 있다. 고개를 셋 넘으면 있다. 김대건 신부 일행은 1845년 8월 상하이에서 돛단배를 타고 출발해 서해를 건너 조선에 왔고 풍랑에 휩쓸려 제주도 서쪽 한경면 용수리에 내렸다가 정비를 한 후 강경에 가까스로 도착했단다.
문수봉에서 계속 능선길을 가면 미리내성지쪽에 이르지만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하산을 시작했다. 원삼면 방향으로. 마애석불이 등산로 가까이에 있기에 다가가서 보았다. 돌에 새겨진 부처상은 마주보고 있었다. 가파른 내리막을 웬만큼 지나고 나니 등산로가 부드러워졌다. 도중에 물소리가 들려 둘러보니 바위 밑으로 샘물이 파이프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셔보니 여간 차지 않다. 산에서 이런 샘물을 만나는 건 행운이다. 실컷 마셨다. 완만한 능선길을 내려오다가 왼편으로 조계종 사찰 법륜사가 보였다. 드디어 원삼면 고당리 마을로 내려왔다. 원삼면 소재지다. 거리가 참 조용하다. 적막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버스 정류장을 물어서 찾아갔고 잠시 뒤 용인 가는 버스가 와서 올라탔다. 6시간 남짓의 산행을 마쳤다. 다음엔 어떻게 해서든 미리내성지까지 걸어볼 생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