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니 2021년 9월에 수리산 종주를 했다. 거의 2년만에 또 수리산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걸어보았다. 출발은 안양시 안양동 신안초등학교 앞에서 했다. 토요일 오전 10시 20분쯤이었다.
관모봉은 수리산의 북쪽에 있는 봉우리인데 이게 만만치 않다. 쉽게 정상을 내주지 않는다. 가파른 고개를 낑낑거리며 오른 끝에 간신히 봉우리에 올랐다. 태극기가 펄럭이고 사방이 탁 트여 있었다. 안양 시내가 손바닥 위에 있는 듯했다. 아파트 숲 속으로 1호선 전철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뿐인가. 무궁화, 새마을 기차도 같은 길을 달린다. 지지대고개를 향하는 1번 국도는 좀 더 동쪽으로 나 있지만...
관모봉에서는 태을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평탄한 길을 걷다가 막바지에 조금 경사가 있다. 관모봉보다 좀 더 높은 태을봉인데 전망이 기가 막힌 관모봉과 달리 태을봉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길고 긴 능선길이 시작된다. 슬기봉을 향하여...
수리산의 주봉은 슬기봉이지만 정작 슬기봉 정상은 올라갈 수 없다. 군부대기 때문이다. 슬기봉 아래로 난 등산로를 걷다 보면 그 높은 곳에 벤치가 있고 그 벤치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괜찮다. 슬기봉에 못 가니 대신 그런 벤치를 제공한 게 아닌가 싶다. 거기선 병목안 방향이 내려다보이는데 숲이 여간 울창하지 않다. 패러글라이딩하는 사람들은 아마 훨훨 날고픈 유혹을 느낄 만한데 패러글라이할 수 있는 활공장은 없다.
병목안으로 내려가느냐, 수리사나 수암봉쪽으로 갈 거냐를 결정해야 하는 갈림길에 이르렀다. 마침 쉼터도 있었다. 처음 집을 나설 때 상록수역까지 가보겠다고 마음먹었기에 가까운 병목안을 포기하고 먼 수리사쪽으로 향했다. 수리사 부근에 이르러서 또 결정해야 했다. 애초 계획대로 안산까지 가느냐 수리사로 내려가느냐. 여기서도 역시 안산쪽으로 길을 잡았다.
능선길을 따라 걷다가 봉우리를 만나는데 서래봉이라고도 하고 너구리산이라고도 하는 데다. 거기 쉼터가 꽤 넓다. 이젠 안양, 산본은 안 보이고 주로 안산이 보인다. 길은 외통수, 줄기차게 걷다가 보니 굉음이 커졌다. 서해안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곳 부근이라 차 소리가 여간 요란하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길까지 잃었다. 제법 높은 산꼭대기에 이르렀는데 운동 기구가 참 많기도 하다. 그런데 이정표가 있긴 했지만 어디로 내려가야 하는지 헷갈렸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몇 번 한 뒤에서야 간신히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최종 목표는 상록수역이고 우선 안산대학교쪽으로 하산해야 한다. 해는 저물고 초조해진다. 다행히 하지 가까운 때라 저녁 8시에도 그리 어둡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캄캄해지고야 말았다.
조심조심 더듬더듬 하산한 끝에 결국 안산시 일동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마지막에 난감한 일을 맞았다. 주택가가 눈앞에 보이는데 산 올라오는 입구에 철문이 세워져 있고 문이 잠겨져 있었다. 아마 낮엔 열어 놓고 밤엔 닫은 뒤 자물통을 채워 놓는 모양이었다. 대략난감... 할 수 없이 축대 아래로 내려와야 했는데 마침 축대 벽에 물 빠지는 쇠통이 있어 그걸 딛은 뒤 바로 앞에 세워져 있는 봉고차에 발을 딛고 가까스로 땅바닥에 발을 디디는 데 성공했다. 문명세계로 복귀했다. 밤 9시가 훨씬 지나 있었다. 10시간 이상 걸은 것이다.
갑자기 번화한 거리에 들어섰고 치맥을 즐기는 사람들이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도 편의점에 가서 캔콜라를 사서 간절히 수분을 원하던 내 몸 안으로 폭포처럼 탄산음료를 넣어주었다. 상록수역까지 걸어가 전철을 타고 무사히 귀가했고... 수리산을 북에서 남으로 길게 걸었다. 걸을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