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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04. 2023

법이 저마다 따로 놀다니!

눈 가리고 아옹은 안 된다

이른바 6법이라고 하면 대한민국헌법, 민법, 형법, 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을 일컫는다. 이들 법은 국가의 기본법인데 다들 역사가 깊다. 헌법은 1948년, 민법은 1958년, 형법은 1953년, 상법은 1962년, 민사소송법은 1960년, 형사소송법은 1954년에 제정되었다. 가장 늦게 제정된 상법이 1962년에 생겼으니 모두 60년이 넘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있다. 6법 중에서 어떤 법은 한자로 씌어 있고 어떤 법은 한글로 씌어 있다. 단적으로 민사소송법은 한글로 씌어 있는 데 반해서 형사소송법은 한자어는 한자로 씌어 있다. 조사, 어미나 한글로 돼 있지 한자어는 거의 다 한자로 적혀 있다. 이는 형사소송법뿐 아니다. 헌법, 민법, 상법, 형사소송법도 한자로 적혀 있다. 오직 민사소송법만 한글로 적혀 있다.


민사소송법(왼쪽)은 한글로, 형사소송법(오른쪽)은 한자로 적혀 있다


여기서 한가지 말해 둘 것이 있는데 한자로 되어 있는 헌법,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도 일반적으로 한글로 바꾸어서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령정보센터에 들어가 이들 법을 검색하면 죄다 한글로 나온다. 이라는 버튼을 눌러야 비로소 한자로 바뀐다. 공포된 원래 모습대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한글로 제공되는 것은 편의상 그렇게 하는 것일 뿐 공식적으로는 한자로 되어 있다. 이에 반해 민사소송법은  버튼을 눌러도 한자로 바뀌지 않는다. 아예 법을 개정할 때 한자를 한글로 죄다 바꾸었기 때문이다. 민사소송법만 그렇고 나머지 헌법,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은 그렇지 않다. 즉 공포된 상태는 한자이고 편의상 한글로 제공되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이란 법이 있었다. 1948년 10월 9일에 제정된 법인데 딱 한 조뿐이어서 조문의 번호가 없다. 내용은 이렇다.


대한민국의 공용 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


'다만, 얼마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라는 단서가 있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공용 문서는 한글로 쓴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률은 2005년에 국어기본법이 제정되면서 국어기본법 안에 흡수되었다. 국어기본법 제14조 제1항은 이렇게 돼 있다.


① 공공기관등은 공문서등을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요컨대 공문서에는 한글을 쓴다고 법률로 규정한 게 1948년이다. 그런데 무려 75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의 6법 중에서 민사소송법만 이를 따르고 있다. 헌법,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이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 국어기본법은 허울만 그럴 듯할 뿐 외면당하고 있는 것 아닌가. 


민사소송법의 본을 받아 다른 기본법들도 한글로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속으로는 한자인데 겉으로는 한글로 제공되고 있으니 헌법,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 등이 한자로 적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눈 가리고 아옹 아닌가. 이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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