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렇게 부주의할 수 있나
기본법이고 오래된 법률일수록 난해하다. 최근에 만들어진 법률은 그리 난해하지 않다. 평이하게 쓰인 법률이 많다. 그런데 민법, 상법과 같은 기본법은 제정된 지 60년이 넘었는데 법률 용어가 많이 쓰인 데다 문장이 서툰 조문이 흔하다. 때로는 명백하게 문장이 잘못된 경우마저 있다. 상법 제694조, 제694조의2, 제694조의3이 그러하다.
제694조에서 '보험자는 피보험자가 지급할 공동해손의 분담액을 보상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게 단번에 잘 읽히나. 뭔가 이상해서 자꾸만 읽게 되지 않나. 왜 이 문장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시제어미가 잘못 쓰였기 때문이다. '지급할'이 아니라 '지급한'이었다면 단번에 이해되었을 텐데 '지급할'이라 잘못 썼기 때문에 '이게 무슨 말이지?' 하고 되풀이해서 읽게 된다.
보험자[보험사]와 피보험자와의 관계에서 보험자가 피보험자에게 보상할 책임 중에는 피보험자가 이미 지급한 공동해손 분담액, 구조료, 특별비용 등이 포함된다는 내용인데 '지급한'이라 해야 할 것을 '지급할'이라 하는 바람에 무슨 뜻인지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이렇게도 부주의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이들 조항의 '지급할'이 '지급한'의 잘못임은 제680조와 비교해보면 금세 드러난다.
제680조도 보험자와 피보험자와의 관계에서 보험자가 부담해야 할 사항을 규정한 것인데 이 조에서는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필요 또는 유익하였던 비용'이라고 했다. '유익할'이 아니라 '유익하였던'이라고 한 것이다. 사실 이 조항에서 '유익하였던'은 좀 과한 느낌이 있다. 그냥 '유익한'이라고만 해도 되는데 이미 이루어진 일임을 강조하기 위해 '유익하였던'이라고까지 했다.
제694조, 제694조의2, 제694조의3도 마찬가지다. '지급할'이 아니라 '지급한' 또는 '지급하였던'이라고 할 때 조문의 뜻이 한눈에 파악된다. 그렇지 않고 '지급할'이라고 함으로써 도대체 무슨 말인지 파악이 안 된다. 이런 조문이 지금까지 방치되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