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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18. 2023

성립되는지 아닌지?

부끄러운 문장

민사소송법은 2002년에 완전히 새로 쓰다시피 하는 개정을 했고 그래서 6법 중에서 가장 반듯하고 깨끗한 법이지만 몇 군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 다음 제216조와 제250조가 그러하다.


제216조(기판력의 객관적 범위)

②상계를 주장한 청구가 성립되는지 아닌지의 판단은 상계하자고 대항한 액수에 한하여 기판력을 가진다.


제250조(증서의 진정여부를 확인하는 소) 확인의 소는 법률관계를 증명하는 서면이 진정한지 아닌지를 확정하기 위하여서도 제기할 수 있다.


이 조문들은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게 무슨 뜻이지?' 하는 의문은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렇기는 하나 문장이 반듯한 한국어인지 묻는다면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성립되는지 아닌지', '진정한지 아닌지'는 문법에 맞지 않는다. '성립되는지'에 이어서 올 수 있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지'이지 '아닌지'가 아니다. '진정한지'에 이어서 올 수 있는 말은 '진정하지 않은지'이지 '아닌지'가 아니다.


사실 이런 것쯤은 중학생 정도만 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기본법에 버젓이 들어 있다. 뜻만 통하면 된다고 생각할 뿐 문법에 맞는지 여부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결과일 것이다. '성립되는지 아닌지의 판단은' 대신 '성립되는지 여부의 판단'이라고 하면 명확하다. '진정한지 아닌지를' 대신에 '진정한지 여부'이라고 하면 명료하다. 물론 '성립되는지 성립되지 않는지의 판단', '진정한지 진정하지 않은지'이라고 해도 된다.


법률은 국가와 사회를 지탱하는 규범이다. 여기에 한 치의 오류도 있어서는 안 된다. 내용뿐 아니라 표현이 완전해야 한다. 흠 잡힐 구석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언어 표현에 오류가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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