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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18. 2023

문장에서 주어는 기본

법은 법률가만의 것일까

대한민국의 기본 6법 중에서 민사소송법만큼은 대단히 반듯하다. 이 법 역시 1960년대초 제정되었을 때는 문제투성이였으나 2002년에 완전히 새로 쓰다시피 개정해서 산뜻하게 바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502조에 이르는 방대한 법이다 보니 일부 문제점이 아직 남아 있다. 필자는 제151조와 제215조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들 두 조에는 문장성분이 온전히 갖추어져 있지 않다. 문장성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분이 주어인데 주어가 드러나 있지 않다.


제151조(소송절차에 관한 이의권) 당사자는 소송절차에 관한 규정에 어긋난 것임을 알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바로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면 그 권리를 잃는다. 다만, 그 권리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인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소송절차에 관한 것임을'에서 '것이다'의 주어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소송절차에 관한 규정에 어긋난 것인지가 나타나 있지 않다. 법률 전문가들은 주어가 생략되어 있어도 무엇이 생략되었는지 알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처음 이 조문을 읽는 사람은 이게 무슨 말인지 금세 이해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주어는 생략되어서는 안 된다. 생략된 주어가 무엇인지 명확한 경우에만 주어를 생략할 수 있다. 명명백백해야 할 법조문에 주어가 생략되어 있고 생략된 주어는 독자가 알아서 보충해 해석하라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제215조도 다르지 않다.


제215조(가집행선고의 실효, 가집행의 원상회복과 손해배상) ①가집행의 선고는 그 선고 또는 본안판결을 바꾸는 판결의 선고로 바뀌는 한도에서 그 효력을 잃는다.


'바뀌는 한도에서 효력을 잃는다'고 했는데 '무엇이' 바뀌는 한도에서 효력을 잃는지가 나타나 있지 않다. 여기서도 역시 바뀌는 게 무엇인지는 독자가 알아서 보충하라는 식이다. 법조문이 이렇게 불친절하고 무책임할 수 있나? 주어가 드러나 있어도 이 조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꽤나 해설이 필요할진대 아예 주어조차 없으니 소수의 법률 전문가가 아니고선 조문의 뜻을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민사소송법은 대체로 매우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는 편이다. 그런데 위 제151조와 제215조는 옥에티처럼 보인다. 법은 법률가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 국민도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장성분의 과도한 생략은 옳지 않다. 민사소송법을 개정할 일이 있을 때 이들 조항은 섬세하게 다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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