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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Jul 19. 2023

있어야 할 문장성분이 없다

말에 대해 이렇게 무관심해서야

형사소송법은 1953년에 제정된 형법에 이어 이듬해인 1954년에 제정되었다. 역사가 매우 오랜 법이다. 그런데 말이 안 되는 문장이 있다. 제32조는 다음과 같다.


제32조(변호인선임의 효력) 변호인의 선임은 심급마다 변호인과 연명날인한 서면으로 제출하여야 한다.


얼핏 봐서 문제가 없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가만 살펴보면 뭔가 이상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제출하다'는 타동사기 때문에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동사인데 '제출하여야 한다'고 돼 있을 뿐 무엇을 제출해야 한다는 것인지 보이지 않는다. '연명날인한 서면으로 제출하여야'가 아니라 '연명날인한 서면 제출하여야'라고 하든지 아니면 '연명날인한 서면으로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하여야'라고 해야 문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제216조는 더욱 이상하다. 


제216조(영장에 의하지 아니한 강제처분) 

②전항 제2호의 규정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 피고인에 대한 구속영장의 집행의 경우에 준용한다.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에는 주격조사 ''가 사용되었으므로 반드시 이 말과 호응하는 동사가 따라야 한다. 그러나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와 호응하는 동사는 보이지 않는다. 문장 끝에 '준용한다'가 있지만 '준용한다'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와 호응하는 동사가 아님은 분명하다. 의미상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와 호응하는 말은 '집행'인데 '집행'은 명사지 동사가 아니다. 동사를 써야 할 자리에 명사를 쓴 것이다. 따라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 피고인에 대한 구속영장을 집행하는 경우'라고 하든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 피고인에 대한 구속영장의 집행의 경우'처럼 주격조사 ''가 아니라 관형격조사 ''를 썼어야 했다.


제32조와 제216조에서 보는 것과 같은 문법 오류는 누구나 알만한 것으로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형사소송법은 지난 세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적용되었고 이 법조문을 재판 업무에 사용한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 잘못된 법조문에 대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그대로지 않겠나. 말에 대해 이렇게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혼란스럽던 1950년대가 아니다. 무려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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