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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정한 사고?

'불확정하다'라는 말이 쓰이기는 하나

by 김세중

우리나라 상법은 좀 특별한 면이 있다고 한다. 1962년에 제정된 우리 상법은 일본의 상법을 크게 참고해서 만들었다. 그런데 일본의 상법은 2005년에 상법에서 회사법을 독립시키고 2010년에는 보험법까지 독립시켰다. 그러나 한국의 상법은 여전히 그 안에 회사법, 보험법이 다 들어 있다.


그런데 일본 법을 본떠 만들었으면서도 일본 법에 없는 희한한 면이 있다. 제4편 보험편의 첫 조인 제638조는 보험의 의의를 규정한 조항인데 다음과 같다.


제638조(보험계약의 의의) 보험계약은 당사자 일방이 약정한 보험료를 지급하고 재산 또는 생명이나 신체에 불확정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 상대방이 일정한 보험금이나 그 밖의 급여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효력이 생긴다.


일본의 상법에는 해당하는 조항에 '불확정한 사고'라는 말이 없이 그냥 '事故'라 돼 있다. 그런데 우리 상법에는 제정 때부터 '不確定한 事故'라 돼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조문을 읽으면서 '불확정한 사고'라는 말에 의문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사고사고불확정한 사고란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불확정하다'라는 말부터가 의아하다. 국어사전에 '불확정하다'라는 말이 올라 있기는 있다. 사전에 '불확정하다'는 형용사로서 '일이나 계획 따위가 확실히 결정되어 있지 아니하다.'라 뜻풀이되어 있다. 비록 사전에는 올라 있지만 '불확정하다'가 형용사로서 언어생활에 쓰이는지는 의문스럽다. 잘 들어보지 못하였다. 설령 그런 말이 있다 해도 '불확정한 일'까지는 몰라도 '불확정한 사고'는 도무지 자연스럽지 않다.


사고는 그 자체가 결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사고는 갑자기, 뜻하지 않게 일어난다. 사고가 있을 지 없을지 모르기 때문에 사고가 났을 때를 대비해 보험을 드는 것 아닌가. 요컨대 '불확정한 사고'든 '불확실한 사고'든 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다. 그냥 사고면 족하다. 사고 그 자체가 불확정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왜 1962년 상법에 '不確定한 事故'라는 표현이 들어갔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더구나 웬만한 용어나 내용, 체재는 일본 상법을 따랐으면서 이 대목만은 일본 상법에 없는 '不確定한'을 왜 넣었는지 궁금하다.


법은 알기 쉬워야 한다. 상식에 부합해야 한다. '사고'로 족하다. 그런데 '불확정한 사고'라 하여 조문을 애매모호하고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불확정한 사고'는 '사고'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확정한'이라는 말이 왜 필요한지 상법학자의 고견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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