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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금지하다니!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생각하며

by 김세중

한 신문이 북한이 ‘오빠’, ‘’ 같은 표현을 “박멸해야 할 괴뢰말 찌꺼기”로 규정하고 관련 법령까지 제정해 단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쓴웃음이 나옴과 함께 착잡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북한은 올해 초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해 '괴뢰 말투'와 '괴뢰식 억양'을 금지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북한이라고 하지 않았다. 늘 북괴라고 했다. 북한괴뢰를 줄인 게 북괴다. 그런데 1980년대인지 1990년대인지 우리 신문에서 북괴가 사라지고 북한이 자리잡았다. 북의 요구에 따라서 그렇게 했는지 우리 스스로 그렇게 결정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요즘 자라나는 세대는 북괴라는 말을 오히려 생소하게 생각할 것이다.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어감이 여간 나쁘지 않은데 바꾸길 잘했다.


우리는 그러한데 북에서는 '괴뢰말', '괴뢰식 억양'이라고 하는 걸 보면 '괴뢰'를 여전히 쓰고 있는 듯이 보인다. 괴뢰란 무엇인가. 꼭두각시 아닌가. 우리가 누구의 꼭두각시란 말인가. K팝을 전세계에서 따라 부르는 마당에 누가 누구의 꼭두각시라는 건지 모르겠다. 괴뢰에 그저 증오의 마음을 담았을 뿐 꼭두각시라는 뜻은 없어 보인다.


괴뢰 말투괴뢰식 억양을 쓰면 처벌한다는 평양문화어보호법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일제강점기가 생각난다. 일제강점기에 살아보지 않았지만 어른들로부터 얘기는 많이 들었다. 소학교(초등학교)에서 조선말(한국어)을 하면 선생님이 벌을 내렸단다.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써야 했단다. 슬픈 우리 역사다. 광복을 맞아 그 굴레에서 벗어났지만 말이다. 그런데 북에서 지금 남한 어투를 쓰면 처벌한다니 일제강점기가 생각난다.


정말 이해되지 않는 것은 '괴뢰식 억양'이다. 억양은 글자가 아니라 소리다. 소리는 증거가 남지 않는다. 녹음을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증거가 남지 않는데 어떻게 처벌하나. 과연 그런 조항이 평양문화어보호법에 정말 들어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다. 들어 있다면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처벌하나. 개인의 사적인 대화를 처벌하는 게 아니고 방송 등에서 그런 억양을 쓰면 처벌한다는 걸까. 강당 같은 데서 수많은 사람이 듣는 가운데 그런 억양을 쓰면 벌한다는 걸까. 모르겠다.


꽁꽁 닫아 잠근 사회지만 어떤 경로로든 문화는 침투해 들어감을 알 수 있다. 중국을 통해서 들어가겠지. 중국과 한국은 뻥 뚫려 있으니까 말이다. 언제까지 기괴한 법률로써 사회를 통제할 수 있을까. 겁이 나긴 나는 모양이다. 자유의 물결이 흘러드는 게 어지간히도 두려운가 보다.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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