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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은 kimbap으로 굳어지나?

로마자 표기법에 대한 생각

by 김세중

미국에 김밥과 같은 한국 음식이 인기라는 기사를 흥미 있게 읽었다. K-팝뿐 아니라 K-푸드 또한 세계인을 사로잡는 듯하다. 한국 음식 하면 불고기나 비빔밥이 떠오르곤 했는데 이제 김밥, 떡볶이까지 가세했다. 그런데 김밥을 영어로 표기하는 것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란 게 있다. 한국어를 로마자로 적을 때 쓰라고 만든 표기법이다. 로마자를 쓰는 나라와 언어는 많다. 남북미 대륙에선 거의 대부분 로마자를 쓰고 유럽도 로마자가 우세하고 동부 유럽에서 키릴문자가, 남부 유럽 그리스에서 그리스문자가 쓰일 뿐이다. 아프리카는 에티오피아를 제외하면 거의 다 로마자 아니면 아랍문자를 쓴다. 언어로 치면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웨덴어 등 숱한 언어가 로마자를 쓴다. 이런 언어들에서 주로 한국의 고유명사를 적을 때 쓰라고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만들어 두었다.


표기법의 이름이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인 데서 보듯이 영어만을 위해 표기법을 만들지 않았다. 로마자를 쓰는 언어는 다 이에 따랐으면 하는 뜻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영어부터 이 표기법은 그리 잘 맞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이다. 'ㄱ'은 g로 적으라고 규정되어 있지만 영어는 한국어 'ㄱ'을 k로 적는 것을 선호한다. 성씨 김(金)씨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김'은 Kim으로 적는 게 보통이지 Gim으로 적는 경우는 드물다. '강', '권' 등도 Kang, Kwon으로 보통 적지 Gang, Gwon은 흔치 않다. 성씨뿐이 아니다. 보통명사도 같다. 김치는 영어 사전에 kimchi로 올라 있지 gimchi로 올라 있지 않다. 심지어 2000년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고시문에도 '김치, 태권도'는 kimchi, taekwondo로 쓸 수 있다고 예외를 인정했다. 규칙에 따르면 gimchi, taegwondo이지만 말이다.


Merriam Webster English Dictionary에 kimchi를 보면 용례에 "To Koreans, life without "kimchi" is unthinkable."이라는 에문이 나온다. kimchi는 이미 영어 단어가 되었고 한국어의 'ㄱ'은 g로 적는다는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과 달리 k로 적고 있다. 아직 김밥은 영어 단어로 이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오를지 궁금하다. gimbap으로 오를지 kimbap으로 오를지 말이다. 표기법대로 하자면 gimbap이지만 이미 영어권 사람들은 흔히 kimbap으로 쓰고 있다. 용례에 따라 사전을 편찬한다면 kimbap으로 오를 것이다. 사전을 만들 때 용례 말고 무엇을 따르겠는가.


그럼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무력한가. 그렇지는 않다. 보통명사는 어떨지 몰라도 '김포, 김해'는 Gimpo, Gimhae가 자리잡은 지 오래다. 20년이 넘었다. Kimpo, Kimhae는 옛날 방식이고 지금은 쓰지 않는다. 그 결과 '김'이 지명에서는 k, 성씨보통명사에는 g로 나뉘는 결과가 나타났다. 묘한 영역 분담이 이뤄졌다.


전에는 이렇게 'ㄱ'을 적는 데 k와 g가 다 쓰이는 걸 큰 문제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이제 생각이 달라졌다. 'ㄱ'을 적는 데 하나로 통일하지 않고 두 가지를 쓴들 무슨 문제가 있나. 예전엔 검색을 해도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으면 검색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달라졌다. 정확히 일치하지 않아도 비슷한 것까지 다 찾아준다. 비슷하기만 해도 되는 것이다. '김밥'이 gimbap이든 kimbap이든 둘 다 쓰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김밥은 그러나 kimbap으로 굳어지는 듯싶다. 예전 매큔라이샤워 방식대로라면 kimpap인데 kimbap인 것만 해도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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