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시옷에 관한 난맥상
필자는 꽤 오래 전 신문의 기사 제목에서 '등굣길', '하굣길'과 같은 말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너무 생소하고 낯설었기 때문이다. 신문이 왜 그런 제목을 달았을까 하는 의문은 곧 풀렸다. 국어사전에 그렇게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기사 제목에 오르는 '채솟값', '휘발윳값' 같은 표기 때문에 속이 상하고 허탈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싶지만 그것도 언론사를 탓할 수 없다. 국어사전(우리말샘)에 그렇게 나와 있기 때문이다. '채솟값', '휘발윳값'은 아예 단어도 아닌 것을 단어로 간주한 다음 거기에 사이시옷까지 붙였고 '등굣길', '하굣길'은 단어이긴 한데 사이시옷 들어간 모양이 여간 보기 흉하지 않다. 자꾸 보면 익숙해진다 할지 모르겠지만 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보기 불편하다.
어떻든 과도한 사이시옷 사용에 현기증을 느끼고 있던 차에 이번에는 거꾸로 응당 붙여야 할 만한 곳에 사이시옷을 쓰지 않은 예가 있어 이건 또 뭔가 싶다. 한 신문 기사 제목에 '배 속에 낚시줄.케이블타이...'라는 말이 나왔다. '뱃속'이 아니고 '배 속', '낚싯줄'이 아니고 '낚시줄'이다. 이건 또 왜 이런가.
과연 국어사전을 보니 '뱃속'이란 말은 ''마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만 되어 있을 뿐 '배의 속'이라는 뜻은 없다. 그리고 거북의 '배'에 관한 글이니 '마음'을 가리키는 '뱃속'이라고는 쓸 수 없겠다고 보고 '배 속'이라 썼나 보다. 그런데 사람이든 거북이든 '배의 속'은 발음할 때 [배쏙]이라 하지 [배 속]이라 하지는 않는다. 물론 [배쏙]이라고 발음한다고 해서 이 말이 반드시 단어라는 법은 없다. 한 단어가 아닌 두 단어라도 둘째 단어의 첫소리는 된소리로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어사전에 '몸속[몸쏙]'은 단어로 올라 있고 뜻풀이가 '몸의 속'이라 돼 있다. 그렇다면 '배의 속'인 '뱃속'도 단어여야 하지 않나. 왜 '몸속'은 단어고 '뱃속'은 단어가 아닌가.
'몸속'을 국어사전에서 내리든 '뱃속'을 국어사전에 올리든 해야 일관성이 있다. 필자는 '몸속'도 단어, '뱃속'도 단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 뱃속에서 크다가 세상에 나온다'고 할 때 '어머니 배 속'은 어색하기만 하다. '어머니 뱃속'이 편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것은 '뱃속'이 단어라는 뜻이다. '몸속'을 국어사전에서 내리지 말고 '뱃속'의 뜻풀이에 '배의 속'을 추가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배 속'은 국어사전에서 '뱃속'의 뜻풀이에 '배의 속'이라는 뜻이 없으니 그렇게 썼구나 싶지만 '낚시줄'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국어사전에 '낚싯배', '낚싯밥', '낚싯대' 등과 함께 '낚싯줄'이 올라 있다. 그런데 왜 '낚시줄'이라 하나. 신문의 표기가 나를 혼란케 한다. 어디 나만일까. 많은 독자들이 당황할 것 같다. 쓰지 말아야 할 곳에 쓰고 써야 할 곳에 쓰지 않으니 사이시옷에 관한 난맥상이 심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