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을 받았다
어제 만난 이는 처음 알게 된 지 20년은 족히 넘었을 듯싶다. 그리고 몇 년 만에 다시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누었다. 그녀에 대해 몰랐던 많은 걸 알게 됐다. 사실 내가 그녀를 만나자고 한 것은 내가 쓰고 있는 책과 관련해 궁금한 것이 있었고 그걸 그녀가 꽤 알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의 시간을 너무 뺏는 듯해서 만난 지 한 시간쯤 되었을 때 이야기를 마무리지을까 했는데 오히려 그가 좀체 대화를 맺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만난 지 2시간 반이 지나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난 장소는 중림동의 한국경제신문 사옥 1층 폴바셋이었다. 그가 오랜동안 한국경제에 근무했었기 때문에 그렇게 정했다. 지난 세월 여러 차례 마주친 일이 있었지만 다 공적인 자리에서였고 사적인 대화를 나누어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알고 보니 나이도 엇비슷했다. 학번은 아예 같았다. 자녀가 둘인데 모두 미혼인 것도 같았다.
그녀가 차분히 들려주는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어떤 인생행로를 겪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편생활을 5년 반 하다가 나와 대학원에 들어갔다고 했다. 이어서 신문사에 들어와 14년을 일했고 공무원으로 특채되어 13년을 근무한 뒤 2019년에 나왔다고 했다. 4년 전이다. 공무원으로서 한 일은 신문사에서 한 일과 엇비슷했다. 말을 다루는 일이었다. 특히 법률 조문의 말을 바로 세우는 게 주된 업무였다.
놀라운 반전이 있었다. 내게 건네준 자신의 명함에 파이낸셜 컨설턴트라 돼 있었기 때문이다. 보험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보험 관련 자격증을 세 가지나 땄다고 했다. 시험을 봐서 말이다. 어찌 놀랍지 않은가. 말, 글, 문법 뭐 이런 거에만 골몰하고 살아오던 이가 어떻게 보험사에서 일하게 되었을까. '제2의 인생', '제3의 인생' 하는 말을 들어보긴 했어도 눈앞에서 실제로 그렇게 사는 이를 보았다.
애초에 그를 만나서 듣고자 했던 것을 거의 다 들었을 뿐 아니라 그녀의 살아온 내력도 많이 알게 됐다. 60이 넘어서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이를 보니 여간 자극이 되지 않았다. 중림동 폴 바셋에서의 두어 시간 대화는 내게 청량제와도 같았다. 그와 헤어져 서울역 쪽으로 걷는데 고산자 김정호를 기리는 표석이 우뚝 서 있었다. 이 부근이 고산자의 고향이었던 모양이다. 이어서 서울역 부근 염천교 수제화 거리를 걸으며 또한 상념에 젖었다. 수제화 거리가 아직 남아 있었다. 한 가게에선 주인이 부지런히 신발 본을 뜨고 있었다. 중림동에서 서울의 옛 흔적을 보았고 젊게 사는 같은 또래 분으로부터 긍정적 자극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