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도 생각이 없나
아침 신문의 어떤 칼럼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권력이 인간을 타락시킨다는 건 틀리는 말이다." '틀리는'에 시선이 꽂혔다. 뭔가 이상하다. 칼럼 필자가 이렇게 썼을 것 같지 않다. 필자는 '틀린 말이다'라 썼는데 신문사에서 '틀리는 말이다'라 고쳤을 것 같은 추정이 강하게 일었다. 왜냐하면 내 경험 때문이다.
작년 11월 14일 바로 같은 신문에 내 기고가 실렸다. 인쇄 직전에 이렇게 나올 거라면서 신문사에서 내게 기사를 보내 왔다. 그런데 내 원고에는 '국어 문법에 맞다'라 돼 있던 것이 '국어 문법에 맞는다'로, '비문은 틀린 문장인데'라 돼 있던 것이 '비문은 틀리는 문장인데'라 고쳐져 있었다. 내 미간이 찡그려졌다. 즉각 전화를 걸었다. '틀린'을 '틀리는'이라 고쳐서는 안 되며 '틀린'이라 못하겠거든 차라리 '잘못된'으로 하라고 해서 결국 신문에는 '비문은 잘못된 문장인데'로 나왔다. '비문은 틀린 문장인데'가 내가 쓰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신문사가 안 된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비문은 잘못된 문장인데'로 타협을 본 셈이었다.
왜 신문사는 필자의 원고를 고치나. '맞다'를 '맞는다'로, '틀린'을 '틀리는'으로 왜 고치나. 이유는 단 하나다. 국어사전에 '맞다', '틀리다'가 동사로만 나와 있기 때문이다. 동사는 '맞는다', '틀리는 문장'으로 활용한다. 문제는 '맞다', '틀리다'가 형용사로도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게 국어사전에 반영이 돼 있지 않다 보니 신문사에서 '맞는다', '틀리는 문장' 따위로 마구 고쳐 버린다. 사전이 무슨 신주단지라도 되는 양.
사전은 완전하지 않다. 미숙하고 불완전하다. 오류가 있기까지 하다. 사전이 언중의 말을 반영해야지 언중이 사전에 얽매여 말해야 하나.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사전을 고쳐야 한다. "권력이 인간을 타락시킨다는 건 틀리는 말이다."를 보고 그 기괴함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이렇게도 생각이 없을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