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밭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중 Dec 07. 2023

제목의 파괴력

정직이 다가 아니다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가 장안의 화제다. 400만이 넘었다느니 500만이 넘었다느니 연일 기사에 오른다. 그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 다만 신문을 통해서 그 영화가 1979년 12월 12일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9시간의 일을 담은 영화라고 알고 있다. 12월 12일에 일어난 일인데 서울의 봄이다. 12월 12일이 봄이라니 말이 되나. 그러나 아무도 이걸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흥행 기록을 쓸 태세다. 사람들은 제목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새로 낼 책 <대한민국 기본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에 대해 내 오랜 친구가 반대의 뜻을 밝혔다. 제목이 너무 '낚는' 느낌이 난다는 것이었다. 책의 내용을 정직하게 반영하는 게 아니라 튀는 느낌, 과장된 느낌을 준다는 거다. 친구는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대한민국 기본법을 고발합니다>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했었다. 제목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었다. 그가 내심 생각했던 제목은 <우리나라 기본법에 방치된,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쯤이었던 것 같다. 물론 책의 내용은 그런 거 맞다. 그렇다고 책의 제목을 그렇게 정직하게 늘어놓을 때 사람들의 눈길을 끌겠는가. 제목을 보고 '이게 무슨 책이지?' 하는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겠는가.


12.12는 '서울의 봄'을 꿈꿨던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무참히 좌절시킨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일로 인해 서울의 봄은 오지 않았다. 광주의 비극이 터졌고 체육관 선거를 거쳐 5공화국이 시작됐다. 민주화는 한참 후로 미루어져야만 했다. 1980년대의 대학 캠퍼스는 최루탄이 터지지 않는 날이 드물었다. 영화 <서울의 봄>이 한겨울 밤에 이루어졌던 쿠데타의 긴박한 실상을 그려내고 있지만 누구도 왜 영화 제목이 <서울의 겨울>이나 <12.12 군사반란>이 아니냐고 묻지 않는다. 만일 제목이 <12.12 쿠데타>였다 해도 이만큼 흥행몰이를 했을까. 정직이 다가 아니다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