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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센도

관용 앞에 무기력한 외래어 표기법

by 김세중

다큐멘터리 영화 크레센도가 개봉됐다. 천재적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실황 다큐멘터리다. 2004년생인 그는 2022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해 자신의 존재를 전세계에 알렸다. 아직 채 20세가 안 된 그는 지금 보스턴에 있는 뉴잉글랜드음악원에 편입해 더욱 기량을 닦고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여기서 임윤찬의 음악에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니다. 최근 개봉된 영화 크레센도의 한글 표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원어는 Crescendo이다. crescendo는 다른 수많은 음악 용어가 그러하듯이 이탈리아어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영어이기도 하다. 영어가 이탈리아어를 받아들인 것이다. 철자는 같되 발음만 다르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이탈리아어 crescendo의 한글 표기는 크레이지 크레가 아니다. 이미 오래 전에 만들어진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그런데 개봉된 영화 제목은 크레다. 왜 그랬을까. 짚이는 데가 있다. 크레의 ''이 발음이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간단하게 크레라 하지 않았을까. (그게 아니고 아무 생각 없이 크레라 했을 수도 있다. 크레가 맞는 줄 알고)


그러나 어찌 됐든 영화는 이미 개봉됐다. 이제 와서 영화 제목을 크레로 돌리는 건 무망한 일이다. 엎질러진 물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무참히 무력화되고 있다. 그러나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할 일은 아니다. 외래어 표기법 자체에 이미 '굳어진 말은 관용을 존중한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규칙과 다르게 관용으로 굳어지고 있는 말이 많다. 영화 제목 크레센도도 그런 예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 제목 다르고 음악 용어 다르면 어찌 되나. 그게 좀 염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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