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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밭

걷는 즐거움

34km 걷기

by 김세중

10여 일 전인 지난해 마지막날 안양 석수동에서 서울 성북동까지 걸어가 보았다. 29.88km를 7시간 반 걸어서 갔었다. 그때의 감격이 잊혀지지 않아서일까. 오늘 또 그 감격을 맛보고자 집을 나섰다. 아침 7시는 아직 어두컴컴할 때였다. 오래지 않아 날이 밝아 왔지만...


목표는 그때와 좀 다르게 잡아보았다. 을지로와 퇴계로 사이에 있는 노포 식당 '사랑방칼국수'를 목표지로 하고 거기서 점심을 먹은 다음 인사동으로 가서 인사동의 골목골목을 헤집고 다녀보고자 했다. 7시 5분 집을 나섰고 비교적 순조로웠다. 지난해 마지막날은 눈 온 뒤라 질퍽질퍽한 구간이 많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추위도 견딜만했다. 날씨는 화창했다.


오래전에 왼쪽 발목에 문제가 생겨서 좀 시큰거렸지만 큰 말썽은 부리지 않았다. 금천구청역, 독산역, 가산디지털역, 구로역, 신도림역, 영등포역, 신길역, 대방역, 노량진역, 노들역을 차례로 지나 한강대교에 이르렀고 다리를 건너 신용산역, 삼각지역, 숙대입구역도 지나고 서울역까지 이르렀다. 숭례문을 통과해 새로나쇼핑 앞을 지나고 명동거리를 통과하고 명동성당 옆을 지나 노포 식당에 이르니 6시간 반이 지나 있었고 거리는 26.5km였다.


머나먼 거리긴 했으되 어려움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게 무거운 짐이 있었나 업고 갈 아이가 있었나. 비교를 자꾸만 6.25 때 피난 가던 울 엄니를 비롯한 윗세대와 하게 되니 어려움이 있을 리 없었다. 길은 잘 포장돼 있었고 날씨는 화창하고 옷은 따습게 입었으니 무에 힘이 들까. 특히 용산을 지나면서부터는 길가에 저마다 개성을 자랑하는 점포들을 눈요기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남대문시장 부근을 지나며 상동교회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주변이 온통 번잡한 상가라 잘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이 교회는 역사가 참 오래다. 상동(尙洞)이라는 지명 자체가 지금은 낯설기 그지없지만 20세기초엔 그곳은 상동이었다. 주시경 선생이 이 부근에서 제자들에게 한글에 대해 가르쳤다고 한다. 다행히 서울시에서 동판으로 문화유산 표지를 붙여놓아서 역사의 흔적을 알아볼 수 있었다.


명동을 지나 드디어 점찍어 둔 노포 식당에 이르렀는데 토요일 1시 반임에도 줄을 서고 있지 뭔가. 다행히 혼자라서 바로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그 일대의 맛집을 소개한 기사를 읽었는데 두 눈으로 직접 지나가 보았다. 미국식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집엔 젊은이들이 가게 앞에 나란히 앉아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고 근처 일본식 음식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찾아간 집은 1968년에 개업했다고 씌어 있었는데 노포 분위기가 흠씬 나는 집이었다.


칼국수로 점심을 하고 나서 인사동으로 향했다. 그리 멀지 않았다. 아니 멀었지만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인사동은 인산인해였다. 늘 대로만 주로 다녔지만 오늘 이곳에 온 목적은 골목을 샅샅이 다녀보는 것이었다. 과연 골목골목마다 다채로운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오늘 처음 가본 곳이 있었다. 천도교중앙대교당이었다. 안에는 들어가진 않았지만 밖에서 건물을 보노라니 건축물의 연륜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100년은 되지 않았을까.


인사동을 여러 차례 와본 적이 있지만 쌈지길안녕인사동은 오늘 처음 알게 된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데가 있을 줄이야! 대로변만 보고 스쳐 지나가는 건 무의미한 일임을 새삼 느낀다. 쌈지길, 안녕인사동이 얼마나 번화하고 번잡한지 제대로 느껴 보았다. 아니 그것마저도 실은 주마간산이요 수박 겉핥기였다. 인사동에 숱하게 많은 음식점이 있다. 30여 년 전 밥을 먹은 적이 있었던 선천집도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지리산은 헐려 없어졌고 그 자리에 무언가를 짓고 있었다.


인사동은 확실히 서울에서 다른 어떤 곳도 따라올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곳 같다. 갤러리가 곳곳에 있고 화구를 파는 필방도 많다. 음식점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한식집이 참 많다. 찻집도 곳곳에 있다. 고서점인 통문관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지만... 서울에 인사동이 있음을 큰 다행으로 여긴다. 그 많은 곳 중에 몇 곳이나 앞으로 가보게 될까. 다 가볼 필요야 물론 없지만 (가능하지도 않겠고) 보물 같은 집들이 곳곳에 있을 것 같다. 예술과 음식이 그곳에 있다. 멋과 맛을 느낄 수 있다.



상동교회
새로나쇼핑 옆에 상동교회가 있다
천도교중앙대교당
복합 쇼핑몰 '안녕 인사동'은 화려하다
'안녕 인사동'의 인파
34km를 걸었다
인사동 골목골목을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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