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의 여행에 흥미를 느낀다
1966년 현암사 법령집이 너무 비싸서(20만원) 사지 않고 대신 민법 제195조가 있는 페이지를 살짝 촬영만 했다. 주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매우 신이 난 듯 소장한 책을 이것저것 보여주었다. 과연 이 서점이 보유한 책 중엔 상당히 귀한 책이 많아 보였다. 국보나 보물급까진 아니라 하더라도 그래도 제법 귀중한 옛 책이 꽤 있었다.
특히 나를 놀라게 했던 책은 大典通編이었다. 이 책은 정조 때 편찬된 책이다. 18세기 책이 이런 허름한 헌책방에 있다니 어찌 놀랍지 않은가! 그밖에도 몇 권을 보여주는데 1930년대 책들 중에 상태가 깨끗한 책이 여럿 있었다. 거의 100년 전 것이다. 사실이지 요즘 헌책방에 가면 그저 헌 참고서투성이인데다 대부분이 1970년 이후에 나온 각종 서적이지 그 이전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서점에 50년이 넘음은 물론 100년 전 무렵의 책이 여기저기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인가 주인은 자발적으로 이런저런 책을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보자기에 소중히 싼 책꾸러미를 펼쳐 보였다. 그 안에 大東與地圖가 들어 있었다. 처음엔 놀랐다. 이게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 원본인가 싶어서였다. 아니었다. 대동여지도는 1861년에 나온 책인데 보자기를 끌르자 나온 책은 1990년대에 나온 복제본이었다. 원본과 똑같은 크기로 200부 정도 제작했는데 그중 한 세트라 했다. 더구나 누가 누구에게 이 책을 선물한다는 편지가 들어 있었다. 책을 선물 받은 사람이 아마 별세하자 유가족이 내놓았고 헌책방에까지 나온 것이다. 1861년의 원본이었다면 눈이 휘둥그레질 일이었지만 1990년대 에 제작된 복제본이었으니 씁쓸했다. 30년 정도 지났나.
어쨌거나 헌책방 순례에 강한 흥미를 느낀다. 책은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옛사람들의 지적 작업의 소산이요 우리 문화의 깊이를 보여준다. 전국 곳곳의 고서점에 귀한 책들이 꼭꼭 숨어 있을 것이다. 미래로도 나아가야 하지만 과거로의 여행도 나름 의미가 작지 않다. 틈나는 대로 다녀보려고 한다. 보물을 찾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