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밭

글쓰기

약속을 지킬 때 소통이 원활해진다

by 김세중

매체가 예전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었다. 종이신문의 수는 별로 늘지 않았는데 인터넷신문의 수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어쨌든 신문, 방송 모두 양이 대단한데 양은 늘었지만 기사의 질은 오히려 그 반대인 듯하다. 특히 말을 바로 쓰려는 노력과 정성은 현저히 둔화된 듯싶다. 주요 신문사에 교열부가 거의 대부분 없어지고 대신 외주화되었다. 면수가 늘어나서 교열 인력은 더 늘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그 반대다. 교열 없이 지면이 제작되는 게 흔한 것 같다. 취재 기자가 쓴 대로 글이 실린다. 외부 기고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한 지인이 자신이 쓴 글이 실린 기사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읽어보고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 누가 차지하느냐가 관권이었다."라고 했다. 관권? 관권이 뭐지? 문맥상 관건임이 틀림없다. 필자가 제대로 쓴 것을 신문사에서 틀리게 바꾸었을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도 전혀 부정하진 못하겠다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든다. 칼럼 필자는 1958년생이니 한자와 한자어를 웬만큼 아는 세대다. 그런 분이 관권이라 했을 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단정은 못한다. 상식적으로는 필자가 관권이라 썼고 신문사에서는 고치지 않고 그대로 냈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1958년생은 지금 60대 후반이 되었는데 20대, 30대였을 때 신문은 온통 한자투성이였다. 한자어는 한자로 표기하는 게 당연했다. 그때 만일 이런 글을 썼다면 한자를 어떻게 썼을까 궁금하다. 관권이란 말은 官權밖에 없는데 '국가 기관 또는 관리의 권력'이란 뜻이다. '관권 선거' 같은 데서 쓰이는 말이다. '누가 차지하느냐가 ~이다'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한자로 썼다고 했을 때 '누가 차지하느냐가 官權이다'라고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관건關鍵으로 '어떤 사물이나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란 뜻이다. 젊은 시절 총명했던 그가 '누가 차지하느냐가 관권이었다'라 했다니 잘 믿어지지 않는다.


2_0h8Ud018svcas1s6ag6289c_hgt0e.jpg '관건'을 '관권'이라 잘못 썼다


이번엔 다른 한 지인이 다른 신문에 쓴 칼럼을 읽었다. "이것을 어떤 식으로 활성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10차시에 걸쳐 강의와 탐방 형태로 진행되었다."라고 한 부분에 눈길이 미쳤다. 뭐가 이상하지 않은가. 뭘 말하려 하는지는 감을 잡을 수 있지만 문장 자체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진행되었다'의 주어가 없고, '문제를'과 호응하는 동사가 없다. 부주의가 낳은 비문이 아닐 수 없다.


6_5hhUd018svc1nyz00vsv9nvm_hgt0e.jpg 문법을 어긴 비문이다


어휘력의 빈곤은 당장 바로잡을 수 있지 않다. 꾸준히 어휘력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문장을 문법에 맞게 바로 쓰는 것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할 수 있다. 주의를 충분히 기울이지 않고 문장을 쓰기 때문에 비문이 나온다. 글은 읽는 사람에게 내 뜻을 전달하기 위해 쓴다. 그 과정에서 누구나 문법을 지켜야 한다. 문법은 우리 모두의 공통의 약속이다.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문법을 어기는 순간 내 생각은 막힘 없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독자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문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서점 방문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