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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주류하는 외국군?

일본 잔재가 뿌리 깊다

by 김세중

법조문을 친근하게 느끼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법조문 하면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거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일 것이다. 이런 선입견은 정당한 것일까. 법조문은 그래야만 할까.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여기 관련 사례가 있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이란 법이 있다. 약칭 군사기지법이다. 이 법의 제23조는 다음과 같다.


제23조(외국군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에의 적용) 이 법은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대한민국에 주류(駐留)하는 외국군의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에 대하여도 적용한다.


'대한민국에 주류하는 외국군'이라는 구절에서 '주류하는'이 뭘까. 괄호 안에 한자 駐留가 있어서 추정은 가능해 보이지만 국어사전에 '주류하다'라는 말은 없다. '주류하다'는 국어에 없는 말인 것이다. 그럼 도대체 왜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은 '주류하다'라는 말을 썼을까. 그것은 헌법 때문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헌법 제60조 제2항은 다음과 같다.


제60조

②국회는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의 주류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헌법 제60조 제2항에 '주류'가 있고 이에 근거해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에서 '주류하는'이라는 말을 썼을 것이다. 따라서 헌법에 원죄가 있다.


헌법은 1948년에 제정되었는데 그때 '주류'라는 말이 쓰이지는 않았다. 1962년 12월 26일 개정되고 1963년 12월 17일 시행된 헌법의 제56조에 처음으로 다음과 같이 駐留가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헌법에서 계속 駐留가 들어갔고 지금에 이르렀다.


第56條

②宣戰布告, 國軍의 外國에의 派遣 또는 外國軍隊의 大韓民國領域안에서의 駐留에 대하여도 國會는 同意權을 가진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2007년 12월 21일 제정되고 2008년 9월 22일 시행된 법인데 헌법에 駐留라는 말이 들어 있으니 이를 근거로 '대한민국에 주류하는 외국군'이라고 했을 것이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은 '駐留하는'이라는 말을 헌법 제60조의 탓으로 돌릴 텐데 이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어떤 일이 빚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헌법을 1962년에 개정할 때 당시 사람들은 어디서 駐留를 가져왔을까. 지금 국어사전에 없는데 당시 국어사전에 있었을 리가 없다.


국어사전에 주류(駐留)가 없지만 일본의 사전에는 駐留가 있다. '진주(進駐)' 또는 '주둔(駐屯)'과 비슷한 뜻이라 되어 있다. 요컨대 주류(駐留)는 일본어인 것이다. 국어에서는 주둔이라 한다. 주둔이라 하면 누구나 알지만 주류라 하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내년이면 광복 80년이지만 아직도 일본 잔재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 그것이 국민의 법에 대한 접근과 이해를 가로막고 있다.


c.png 일본어 사전에 '駐留'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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